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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웨슬리를 오해한 사람들에대한 웨슬리의 주장10 (1739.8.27)

본문

[1739년 8월 27일(화)]

두 시간 동안 나는 시기가 많은 사람과 논쟁하면서 내 십자가를 졌다.
나는 그에게 ‘내가 영국 교회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애썼다.
그는 내가 ‘영국 교회의 교리와
다른 어떤 교리를 내가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교회의 담을 넘어
그 교리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용납하지 못했다.
그가 또 인정한 것은
(누가 진리에 대해서 유념하고 있는지 아니면 수치감을 가지고 있는지
어느 누구도 진정 부인할 수 없듯이)
이 가르침으로 이제까지 알지 못해서
패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그리고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인도되었고, 인도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덧붙여서 ‘누구도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말하는 바는, 이러한 일들이 수난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실제로 지금 브리스톨 (Bristol)에서 돌고 있는 보도에 따르면
내가 ‘예수회 신부가 아니라면, 가톨릭 신자’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로마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자랐다고’들 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정으로 믿고 있었다.

오 너희 어리석은 이들이여,
언제 너희는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를 설교하는 것이,
즉 우리의 칭의의 원인으로
어떤 공로도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의 의로우심만 인정하는 것,
그리고 어떤 조건적 수단적 원인을 인정하는 않고,
믿음만 인정하는 것이
천주교를 기초에서부터 뒤집어 엎는 것임을 이해할 것인가?
언제 너희는 혐오스러운 것들의 어미인
로마가 야기한 모든 잘못들 중에서
가장 파멸적인 것이
(그것에 비해서 화체설과 백 가지가 넘는 잘못들은 공기처럼 가벼운 사소한 것들이다)
우리가 행위에 의해서 의로워진다는 하는 것,
또는 (같은 것을 표현하지만 좀 고상하게 말해서)
우리가 믿음과 행위로 의로워진다고 하는 것임을
이해할 것인가?

자, 내가 설교하는 것이 이것인가?
지난 십 년 간 그랬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천주교인이었고,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는 바는
(그리고 나에게 이날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 핵심으로 주장하는 바는)
‘칭의 이전에 어떠한 선한 행위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누가 이런 보고서를 썼는지 가끔 문의를 해 보았다.
그 보고서를 쓴 사람들은
대체로 편견이 아주 심한 반대자들이거나
(내가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우리들 속한 교회의 목회자들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합당한 근거나 동기가 무엇인지
나는 자주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설교나, 인쇄물이나 대화에 있어서
지난 몇 년 동안 분명하고도 공개적으로
그들이 가진 원칙들을 선언했던 사람들을
거의 못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아예 아무 것도 몰라서 그렇게 말했든지
(그들의 편에 서서 말하자면)
-그들은 천주교가 무엇인지 천주교인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아니면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틀리게 말했든지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부끄럼 없이
이 도전을 감행한 너희가 누구이든지 간에,
높은 자든 낮은 자든 적대자들이든 교인들이든,
성직자이든 평신도이든 간에,
이제 이것을 너희 자신에게 적용해서,
너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것을 이해하도록 하라

너희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고, 그가 너희 마음의 비밀을 아셔서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희가 그렇게 크고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면
(나는 지금 너희 설교자들에게 말하고 있는데, 특히 교단에 상관하지 않고 하는 말이다),
어찌 너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세상 모든 것의 심판자 되시는 분 앞에
너희를 소환해서 공개적으로 너희의 혐의를 증명하거나,
또는 공개적으로 고소를 철회시킴으로써,
하나님께,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너희가 최선을 다해서 보상하도록 하고 싶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거짓말에 거의 넘어가게 된 사람들을
충분히 만족시키기 위해서 나는 로마 교회에 대해서 신중한 판결을 여기에 추가로 적도록 하겠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
성만찬을 집례하는 목회자에게 글을 써 보냈다.

목사님께,
편지를 보내주시고,
내 아버지의 제안들을 소르보네 (Sorbonne)에
추천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와 논쟁하고 싶지도 않지만,
최소한 가톨릭 신자들과는 해야겠습니다.
그들이 원문에서 인용한 모든 구절들을 검토하기 전까지
나는 그들의 인용을 신뢰할 수 없고, 그들과 우리들 사이에 부딪치는 점들에 대해서
원문 자체가 말해주는 바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의 수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 저자들에 대해서 수정을 가하고,
그들이 수정한 것과 부딪치는 본문들에서는
저자들의 것들을 제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는 경우에는,
로마 주교의 위엄에 거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점에 있어서
본문을 신중하게 다룹니다.
그래서 성 시프리안 (St. Ciprian)의 작품들이 힘들게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해도
나에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작품들이 잘 교정되지 않은 것이 더 놀랍습니다
-그 작품들에는 여전히 그것을 완전히 뒤집어 엎을 수 있는 본문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폼페이아누스  (Pompeianus)에게 보낸 성 시프리안의 일흔 네 번째 서신을
금서 목록 (Index Expurgatorius)에서 제외시킨 일이 얼마나 중대한 과실이었는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교황 시프리안이 아주 직설적으로 스테반 교황이
‘교만하고 완고하다고 비난했고, 이단자들의 무리를 옹호하는 자,
곧 기독교인들과 하나님의 참 교회에 대항하는 사람이라고 그를 비난했습니다!
스테반을 교회의 흠이 없는 머리로 믿는 사람은 복음서와 코란에
차별을 두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렇게 천박하고 모욕적인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 교인들은 종종 그렇게 여겨집니다.
내가 감히 누구에게 불평을 한다거나 어느 누구를 경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같은 주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그토록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어떤 가톨릭 교인도
그의 언약 조건에 따라서 구원 받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두 가지에 다 해당된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Ergo) …
사소한 것들을 내가 증명할 때 나는 개신교의 작가들의 글이나
그들 자신의 공동체에 속한 특정한 저술가들의 글로 하지 않고,
로마 교회의 대중적이고 진정성 있는 기록들로 합니다.
트렌트 공의회의 법령과 교회법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사용한 인쇄물은 콜론 (Cologne)에서 인쇄된 것이었는데,
당국의 허가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선, 모든 가톨릭 교인들은
그런 의미에서 계명들 중에서 하나를 어기고
사람들에게 어기라고 가르칩니다.
이미지에 대한 그 단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incurvare se-procumbere, honoris exhibendi causa
(어떤 사람 앞에서 절 하는 것은 그를 존경한다는 표시입니다)
(이 표현은 칠십인역에 의해서 번역되었는데,
정확하게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헬라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proskunei/n).
그러나 트렌트 공의회
(결과적으로 모든 가톨릭 교인들이,
엄밀하게 말해서,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합니다)는
그것이 legitimus imaginum usus …
eis honorem exhibere, proexhibere,
procumbendo coram eis
(이미지들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것들 앞에서 절을 함으로써 그들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라고 가르칩니다.

둘째로,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말하자면, 생명 책에 기록된 것들에 덧붙이는 사람들입니다.
법령과 교회법에 추가된 피우스 4세(Pius IV)의 교서 안을 보면,
 다음의 사항들이 추가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 7성례
(2) 화체설
(3) 단 한 종류의 성찬
(4) 연옥
(5) 성자들에게 하는 기도
(6) 유물 숭배
(7) 우상 숭배
(8) 면죄부
(9) 로마 교회의 우월성과 보편성
(10) 로마 주교의 패권.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은 가톨릭 교인들이 생명 책에 기록된 것들에 더 추가한 것들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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