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는가? (8월30일)
본문
2009년 8월30일 주일낮예배
제목 :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본문 : 출19:3~4
하나님을 사랑하는가?(출 19:3-4)
신앙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은 하나님과 깊이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맺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능력이 우리 안에 흘러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 생명력과 생기가 넘쳐서 삶이 복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드리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사랑을 나눌 가족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2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에덴 동산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15절 말씀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두어 살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사건 속에서 크게 두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2) 선악과를 만드셨습니다. 선악과를 만드셨다는 것은 사람을 로보트로 만들지 않고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 의지라고 하는 선택 의지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강요된 사랑보다는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 의지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나아가 사랑을 받고 감복하여 일어나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 받는 깊은 교제를 나누는 목적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신 것도 하나님의 가족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에게 10 가지 재앙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하고,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이끄시며, 새벽마다 만나를 내려서 먹게 하시고, 목이 갈할 때 반석에서 물이 솟게 하시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 메추라기가 떨어지게도 하시며, 하나님께서 많은 놀라운 능력의 행하심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로 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사건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이 일을 누가 하십니까? 오직 한 분, 하나님 그 분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데 왜 이 엄청난 기적과 표적들을 행하십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10 가지 재앙, 광야의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 가운데서 하나님이 백성들을 이끌어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과 친밀한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 어떤 일보다도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보다도 더 하나님과 깊은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 우선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길을 행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호세아 6장 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인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의 허물과 죄, 가증스럽고 더럽고 부끄러움, 죽어 마땅한 나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내가 받고 그 사랑에 감복해서 나도 하나님을 한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종교 의식으로서 제사를 더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행사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3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세우셔서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있게 하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쫓아 내는 권세를 주셨다.” 여기에는 두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1)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2) 전도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영적 에너지와 능력을 주십니다.
성도들이 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하십니다. 함께 있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님과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깊은 사랑의 만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먼저입니다. 그 사랑에 흠뻑 젖은 후에 사랑 가운데서 일어나 사역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4.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14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십니다. 그 때 하나님은 계획과 방법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모세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일어나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도록 참여하는 사역자로 서는 것 뿐입니다. 모든 결정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신앙하고, 믿음 가운데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도록 참여하는 사역자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 정하십니다. 방법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출애굽 사건을 일으킬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네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와 조상들에게 그 때 그들의 인생을 간섭한 하나님이 바로 나다. 너희 조상들의 인생에 간섭한 하나님이 오늘 너의 인생도 간섭한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셔서 구경만 하고 게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실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가 할 수 있는 어떤 결정권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신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모세는 따랐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따름으로 참여했던 사역자가 된 것입니다.
엘리야가 기도할 때에 가물었던 하늘이 열리고 비가 내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비를 내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에 엘리야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이루어지도록 엘리야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합니다. 또 그 일이 이루어지니 않으니까 다시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청청 마른 하늘에 비가 떨어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엘리야가 능력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일어나 기도하는 사역자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그 일을 이루십시오.
달란트 비유를 마태복음 25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열심히 장사해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묻어 두었습니다. 그는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심판 받습니다. 바깥으로 내어쫓김을 당합니다. 가슴을 치며 후회합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주인의 결정사항에 대하여 열심히 동참했던 두 사람은 착한 종입니다. 주인의 결정에 대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땅에 묻어둔 그는 게으른 종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모세가 순종하는 동역자가 되고, 엘리야가 기도하는 동역자가 되고,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장사함으로 동역자가 된 것처럼 하나님의 주도적 결정이 현실이 되도록 참여하는 사역자가 되는 것을 주님은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정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악한 종입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목적이 이루어지는데 구경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랑의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가서 우뚝서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참여하는 사역자가 되십시오. 결정은 그 분이 하십니다. 그 결정이 현실이 되도록 결정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참여하는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향하여 임재의 거룩한 은혜를 주시면서 150만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임재의 은혜 가운데서 일어나 하나님의 150만의 영혼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일에 동참하는 사역자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