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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Wesley -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본문

1.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  웨슬리 설교



 

여러분은 은혜 가운데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에베소 2;8)

 


1. 사람이 받는 모든 축복은 다 하나님의 은혜, 그 부요하심과 사랑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음에도 값없이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가 비록 사람은 그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그 자비에 대하여 주장할 아무 권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사 생령(生靈)이 되게 하셨으며, 그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바로 우리의 생명,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것도 역시 값없이 주시는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는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우리는 그것을 가지거나 행하기에 아무 가치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모두 그의 자비의 표적들입니다. 사람 안에 어떤 의가 있다면 이것도 또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 그러면 죄인인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자기가 지은 죄를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그 죄를 대속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공로를 가지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에게 공로가 많고 또는 거룩함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진실로 인간 자신은 아주 불결하며 죄에 물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두 죄에 대하여 대속이 필요한 것입니다. 좋지 못한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사람의 마음은 전적으로 부패했고 가증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시초에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의 영혼에 주셨던 영광스러운 의가 결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하나님 앞에 내놓을 아무 공로도 없고 의도 없으니 하나님 앞에서 굳게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3. 만일 이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다면, 이것은 “은혜 위에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축복으로 가장 큰 은혜, 곧 구원을 우리에게 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 선물에 대하여 감사하는 말 외에 다른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실로 “우리가 아직 죄인이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심”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은혜 가운데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은혜는 구원의 원천이요, 믿음은 구원의 조건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다음의 것을 조심스럽게 고찰하여 보도록 합시다.


Ⅰ. 우리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어떤 믿음에 의해서입니까?

Ⅱ.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은 어떤 것입니까?

Ⅲ. 이에 대한 반대에 대하여 어떻게 답변할 것입니까?





우리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어떤 믿음에 의해서입니까?

1. 첫째로, 이 믿음을 이교도(異敎徒)의 신앙과는 다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명하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또한 자기를 진심으로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라”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하나님으로 확신하여 영광을 돌리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공의와 자비와 진실과 도덕적 미덕을 모든 사람에게 행함으로 말미암아 찾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헬라 사람이나 로마 사람이나 시디아 사람(서북 아시아)들이나 인도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의 속성 또는 장차 받을 상벌이나 도덕적인 덕목의 성질마저도 믿지 않았다면 저들까지라도 변명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도 이교 신앙이란 그 이상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우리고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이 믿음은 마귀의 믿음과도 다릅니다. 마귀의 신앙은 이교도의 신앙보다는 훨씬 앞섰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하나님이 은혜 많으사 보상하시며 의로우사 죄를 형벌하시는 현명하시고 능력 많으신 분이심을 믿을 뿐 아니라,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분입니다.”(누가 4:34)라고 똑똑히 말하였던 것입니다. 불행한 영들이라 하지만 그들이 거룩한 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과 옛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된 모든 말씀을 믿지 않는다고는 의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또 마귀일지라도 두 사람의 거룩한 사도에 대하여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들이다”(사도행전 16:17)라고 영광스러운 증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때에 하나님과 인간의 큰 원수도 하나님의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그가 “그의 모든 원수를 자기 발 앞에 두시리라”는 것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믿으며 또한 그렇게 믿는 가운데 떨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신앙은 이 지경에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 곧 지금 설명하고자하는 믿음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이 가졌던 믿음과도 다른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를 믿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랐으며,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가져 병자와 각양 질병을 고치며, 악마를 제어할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더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하여 주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도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구원을 받게 하는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4. 그러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이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일반적으로 말해,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이 바로 이 신앙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있어서 이 신앙은 고금(古今)의 이교도들의 신앙과는 전혀 또는 절대적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 신앙이란 어떤 사변적(思辨的)이요 합리적인 것으로 냉랭하고 생명 없는 동의(同意) 즉 어떤 관념의 연속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이것은 마음으로 믿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로마 10:9,10).

5. 이런 점에 있어서 이 신앙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이 가졌던 신앙과도 구별되는 것입니다. 즉 이 신앙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필요성과 공로를,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이 신앙은 예수가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로마 4:25) 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죽으심이 인간을 영원한 죽음에서 구속하시는 유일하고도 충족한 방법으로 보며,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들의 생명과 썩지 않을 것으로 회복하시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란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에 대한 동의일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보혈에 전적으로 의뢰하는 것, 즉 예수의 생명과 죽음과 부활의 공로를 신뢰하고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고 또한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들의 대속이시오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이것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그의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에 화해되었다는 확실한 자신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지혜와 의와 성결과 구속”, 한 마디로 말해 우리의 구원이신 그에게 가까이 하여 결국 접붙여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믿음을 통하여 오는 구원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이 두 번째로 생각하고자 하는 문제입니다.

1. 첫째로, 무엇보다도 이는 현재의 구원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것, 참으로 이 땅 위에서 이 신앙을 가진 자는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신자들에게, 아니 모든 시대에 있는 신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이것도 진리이기는 하지만)라고 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에베소 2:9)고 한 것입니다.

2. 여러분들은 (한 마디로 모든 것을 포함하여) “죄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맏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미리 천사를 통하여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 할 자이심이라“(마태1:21)고 예언한 바 그 큰 구원인 것입니다. 성성의 어디를 보더라도 어떤 제한이나 제약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 성서에 표시된 대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죄“에서 구원 하실 것입니다. 원죄, 자범죄(自犯罪), 또는 과거의 죄나 현재의 죄를 막론하고 육과 영의 모든 죄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저들은 자기들의 권세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3.첫째로 이는 과거의 모든 죄의 죄책(guilt)에서의 구원입니다. 세상은 하나님 앞에서 다 범죄하여 곁길로 나갔으니, 만일 하나님께서 이것을 지적하시고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그앞에 설자가 누구이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주는 것 뿐이지 거기에서의 구원은 갖다 주지 못하니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는 것입니다.(로마 3:22). 그리하여 저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9로마 3:24)가 되었습니다. “이 예수로 하나님이 그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라디아 3:13) 주께서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儀文)에 쓴 증거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느니라(골로새 2: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4. 죄책에서 구원받은 자는 또한 두려움에서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는 불순종한 아들이 부모에 대하여 갖는 그런 두려움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노예로서 갖는 두려움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두려움, 하나님의 형벌과 진노에 대한 두려움에서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대할 때 지금은 벌써 그를 무서운 주(主)로서가 아니라 관대한 아버지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저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성령이 친히 저희 영으로 더불어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저들은 또한 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두려움, 이리하여 크고도 귀중한 하나님의 약속에 미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에서 구원받은 것입니다(그들은 우리의 기업에 보장이 되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에베소1:13). 그러므로 저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저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 마음에 부은 바 된 것입니다”(로마 5:5). 이에 의하여 저들은 (아마도 늘 그런 충만한 확신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망이나 생명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5. 또한 이 신앙에 의하여 저들은 죄악에서 구원을 받는 동시에 죄의 세력에서부터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요한 일 3:5)라고 외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났음이라” 하였고, 또 5장 18절에서는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가자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라고 거듭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6.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1) 어떤 습관적인 죄로 인하여 범죄하지 않습니다. 이 습관적인 죄란 모든 사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마음 속에서는 그 죄가 지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어떤 고의적인 죄로 인하여 그 죄를 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 안에 거하는 자의 의지는 모든 죄에 전적으로 반항하며 또한 이를 무서운 독과 같이 미워하는 까닭입니다. (3) 죄된 욕망에 의하여 죄를 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단히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으며, 그리고 자기 마음 속에 조금이라도 불결한 욕망이 생기자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죽이게 되는 까닭입니다.

(4) 또한 그는 행동에 있어서나 말에 있어서나 생각에 있어서 인간의 연약성(infirmity)으로 인하여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연약성과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는 별개의 것이며, 죄는 의지의 작용으로 인하여 범하여지는 까닭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범죄한 일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러나 지금은 범죄치 아니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이것이야말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이는 현세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구원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과 그 죄의 결과에서의 구원을 일컬어 종종 의인(義認, justification)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광의(廣義)로 취할 때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지금 그를 믿는 죄인에게 이루어지는 죄책과 형벌에서의 해방을 뜻하며, 또한 그 신자의 마음 속에 형성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죄(전체)에서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는 진실로 거듭난 자인 것입니다. 그는 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인(골로새 3:4) 새 생명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니 이전 것은 지나갔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새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새로 난 아기처럼 즐겨 순전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여, 이에 의하여 장성하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믿음에서 믿음으로, 은혜에서 은혜에로 나아가 마침내는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설명한 것에 대해 첫째로 흔히 나오는 반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즉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고 설교하는 것은 성결과 선행(善行)을 반대하는 것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는 극히 간단한 대답으로 족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사람과 같이 이 신앙을 성결과 선행에서 분리된 것으로 말한다면 그 말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는 반대로, 이는 선행과 모든 성결을 낳게 하는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더 충분히 생각한다는 것이 무익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반대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 때부터 있어 왔던 반대인 까닭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는가?” 라는 반문은 그 때부터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먼저 이렇게 답변합니다. 믿음을 외치지 않는 자가 곧 율법을 폐하는 자입니다. 즉 저들은 직접 성서 본문의 정신을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제한함으로써, 또는 간접적으로 율법을 이루게 하는 유일한 방법인 이 믿음을 지적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율법을 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째로, 우리는 “믿음 이전”의 범위와 성서 본문의 영적 의미를 제시하며 이로써 율법의 의를 성취할 수 있는 이 산길로 민인을 부름으로써 “우리는 율법을 도리어 굳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그리스도의 보혈에만 의뢰하면서 하나님께서 지정하는 모든 규례를 지키며 하나님께서 저들이 그 안에 걸어야 하도록 미리 준비하여 놓으신 모든 성행을 행하고, 더 나아가 모든 거룩한 하늘의 성정,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 마음을 즐기고 또한 나타내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이런 신앙을 설교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만하게 하는 데로 인도하지 않느냐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답변합니다. 자칫하면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각별한 주의를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사도의 말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경고가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므로 첫 가지들은 꺾이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로마 11:20 이하 참조). 그러므로 그 안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 사도 바울이 이미 예견하고 답변한 다음과 같은 반문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로마3:27). 만일 사람이 자기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면 그로부터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로마 4:5) 영광이 없게 되고 맙니다. 같은 의미의 말씀이 에베소서 2장 4절을 전후하여 또 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는 곧 값없이 받는 분수에 넘치는 선물입니다. 여러분이 구원 받은 것은 바로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원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곧 오직 그의 은총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의 한 예(例)요, 여러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에베소 2:9). 우리가 믿기 이전의 모든 행위, 모든 의는 하나님 앞에서 상 받을 것이 못됩니다. 도리어 정죄함이 있습니다. 믿음에 합당한 선행이나 의는 인간의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을 때 얻어지는 구원도 우리가 행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때에 우리 안에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보상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행하신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따라서 찬양할 것은 하나님의 풍부하신 자비뿐이요, 우리가 영광을 받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4. 그러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말하는 것, 곧 단지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구원을 얻는다(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장려하는 것이 되 않느냐고 반대하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진실로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죄를 계속하여 지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하면 저들의 피가 저들 머리 위에 머무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선은 저들을 인도하여 회개하게 합니다. 진실한 사람은 그렇게 회개합니다. 저들이 아직도 하나님께로부터 용서함을 받아야 할 줄 알 때에 하나님께서 그 죄를 도말하여 주시기를 바라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크게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이 간절히 부르짖고 낙심치 아니하여 저들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모든 방법으로 그것을 얻을 때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실 것이며 결코 지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시간에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마치 하늘에서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과도 같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부어 주신 예를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사도 바울과 실라가 설교하기 시작하는 그 시간에 옥사장이 회개하며 믿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오순절 때에도 베드로의 첫 번설교에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회개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그 능력에 대한 많은 산 증거가 있습니다.

5. 바로 이 진리에 대하여 다른 각도에서 반대를 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함으로써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이것은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인즉 사람 자신의 행위나 공로나 의로 구원을 받는다면 실망 뿐일 것입니다. 진실로 사람은 자기 자신의 것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서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애쓰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에서 오는 의는 율법에서 오는 의를 신뢰하고 있는 동안은 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6.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것을 불유쾌한 교리라고 말합니다. 마귀가 이런 것을 가지고 사람에게 말할 때에는 자기 생긴 모양대로 말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진리도 수치도 개의치 않고 말합니다. 마귀의 속삭이는 말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걷고 저주받은 자에게는 듣기 좋은 말로, 즉 위로로 가득한 것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같은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로마10:11,12). 위안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보다 높고 사망보다 강한 위안입니다. 아니, 이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자비입니까? 공공연한 약탈자 삭개오를 위한, 부정한 여인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를 위한 자비입니까? 어떤 이가 “아, 그러면 나, 아니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자비를 바랄 수 있겠구나!”하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당신도 그와 같이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당신, 아무도 위로할 수 없는 당신도 그 자비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기도를 물리치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 순간에 말씀하실 것입니다. “기뻐하라. 너희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 그렇게 죄를 용서함 받았기에 그 죄는 벌써 당신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 후부터는 성령께서 당신의 영과 더불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실 것입니다.(로마 8:6 참조). 오! 이것이야말로 좋은 소식, 대단히 기쁜 소식, 만민에게 주어진 복음이 아니겠습니까? 오!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서서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사라(이사야 55:1). 그리고 너희 죄가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이사야1:18), 또는 머리털보다도 많을지라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이사야 55:7)했습니다.

7. 아무 반대도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손쉽게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의 도리를 가장 중요한 교리로 설교하여야 하는 일을 잊어버리고, 더 아나가서는 전혀 설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린도 전 3: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이 우리의 설교의 기본이요 또 기초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첫째로 설교하여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 교리를 각계 각층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누구에게 이것을 설교하지 말아야 합니까? 누가 제외될 것입니까? 가난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은 복음을 들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식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배우지 못하고 무식한 사람에게 처음 나타내셨습니다. 어린이들일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죄인들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마태 9:13 참조). 그러면 제외될 사람이 누구입니까? 부요하고 유식하고 평판이 높은 도덕가를 제외할 것입니까? 그들이 종종 자신들은 제외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외쳐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대 분부를 내리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말씀을 왜곡하여 멸망을 가져오게 한다면 그 책임은 스스로가 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주님께서 살아 계시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는 외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8. 여기에서 우리는, 이 교리는 곧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이라고 똑똑히 밝혀 말합니다(에베소 2:8). 왜냐하면 교회는 이 교리를 오늘날처럼 똑똑히 주장하지 못해 왔기 때문입니다. 천주교회가 주고 있는 미혹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교리였습니다. 천주교회의 그릇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이 교리는 그 근본을 공격한 것으로, 이 교리가 성립될 때 천주교회의 모든 교리는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리야말로 우리가 주장하는 바 그대로 기독교 종교의 강한 반석이요 기초인 것입니다. 이 교리가 교황(敎皇)을 왕국에서 처음으로 내쫓았습니다. 이 교리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 교리 외에 이 땅 위에 홍수처럼 퍼지고 있는 부도덕을 시정할 교리는 없습니다. 아주 깊은 대양(大洋)을 한 방울 한 방울로써 비울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간언(諫言)으로써 우리를 어떤 악한 습관에서 개혁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오는 의”를 얻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될 때 그 자만의 파도는 정지되고야 말 것입니다. 이 교리 외에는 아무것도 부끄러움을 자기 영광으로 삼고 자기를 값 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하는 우리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저들은 율법에 대하여 그 율법을 자기의 마음에 기록하여 가지고 있는 자와 마찬가지로 아주 고상하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이 제목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저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느끼게끔 됩니다. 그러나 저들을 율법에서 복음으로 인도하십시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시작하십시오. 믿는 자들을 위해서 율법의 마지막이 되신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십시오. 과연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다 된 것처럼 보일지라도(almost Christian) 그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aitogether Christian)이 아니면 그들은 결국 멸망의 자식이 될 것이며, 마치 지옥의 밑바닥이 천당의 꼭대기에서 아주 먼 거리에 있는 것과도 같이 그들은 영생과 구원의 자리에서는 아주 먼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이시여, 이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9.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세상에 외쳐질 때마다 그 반대자들은 성을 내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교리를 처음으로 설교하는 자들을 파멸시키려고 그들은 땅과 지옥을 동원하여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저들은 이 신앙이 홀로 자기들의 왕국의 기초 돌을 전복시킬 수 있는 것임을 알고 이 교리가 일어날 때부터 자기들의 전 세력을 동원하여 온갖 거짓말과 비방을 다 하면서, 만군의 하나님의 일꾼인 마틴 루터를 위협하였던 것입니다. 이 위협이 얼마나 컸던가는 상상하기는 곤란합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사람으로서 그는 거만하고 강하게 무장한 그 장사(壯士)를 분노케 하였으며 그 장사는 결국 손에 갈대 하나를 쥐고 나오는 어린아이에게 정지되고 무시를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특히 그 어린아이가 분명히 자기를 능가하리라는 것을 알자 그를 짓밟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가장 약할 때에 그 힘이 가장 강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작은 아이와 같은 당신은 전진하십시오. 주의 오른팔이 놀라운 일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린아이와 같이 약하고 무능할지라도 어떤 강한 자가 당신을 이겨내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분명코 저를 이기고 정복하며 그를 능가하여 마침내는 그를 짓밟을 것입니다. 당신은 전진, 전진, 구원의 대장 밑에서 승리, 승리하여 마침내는 당신의 온 원수를 다 넘어뜨리고 사망이 승리(생명) 안에 삼키울 때까지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 은혜와 영광과 지혜와 존귀와 능력과 전능이 영원히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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