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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영광 가운데 거하라(7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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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26일 주일낮예배
제목 : 하나님 영광 가운데 거하라
본문 : 막2:1~10
특송 : 조원직 전도사 (미 뉴잉글랜드 한인교회)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부분을 나누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돈 많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온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과 명예, 건강이 있어야 합니다. 이 젊은이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를 잘 두어서 아버지의 신분이 이 아들에게 있습니다. 이 아들은 젊습니다. 그래서 건강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돈과 명예와 건강이 있으면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젊은이가 찾아온 것은 돈이 없어서도 명예가 건강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돈이 있고 지위가 있어도 건강이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깊은 곳에 인간의 본연의 심상 속에 깔려 있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서입니다. 젊은이가 예수님께 드린 질문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때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네가 율법을 아느냐?” “네 압니다. 어려서부터 잘 지켰습니다.” “그래, 네가 생각하기에 너는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건강도 있으며 율법도 잘 지켰다. 하지만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네 마음에 사랑이 없구나. 그 많은 것으로 없는 사람, 춥고 배고픈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줄 모르는구나. 그 때에 인생의 참 행복과 만족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젊은이의 가치관이 물질적인 것에 찌들어 있기 때문에 그는 사랑의 엄청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재물이 많은 고로 나눠주는 것이 아까워서 예수님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서도 유일하게 울상을 짓고 돌아갑니다.

신앙이란 무엇이 가장 귀한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귀합니까? 정말 예수가 귀합니까? 예수가 귀한 줄 알면 돈을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크신 분인 것을 알면 아브라함처럼 아들 이삭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참 믿음이란 귀한 것을 귀하게 알아보는 안목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한 분을 귀하게 알아보는 깨달음, 이 깨달음이 신앙의 깨달음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신앙의 의식화라고 합니다. 밭에 묻힌 보화를 발견하고 모든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삽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귀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 귀한 것을 얻기 위해 투자하고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생활화라고 합니다. 기독교 성도들이 반드시 해야 할 두 가지는 신앙의 의식화와 신앙의 생활화입니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바알이 참 신이라면 바알을 믿고 하나님이 참 신이라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는 “나와 우리 집 식구는 여호와를 택하고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신앙이란 그런 것입니다. 참신을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분이 가장 귀한 분인지 발견하고 그 분을 선택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의식해서 그분을 선택해서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신앙의 생활화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가장 귀한 그분께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질병은 나라고 하는 자기중심입니다. 이 때문에 정서적 불안과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나밖에 없다고 하는 자기중심주의, 나만 아는 다른 사람을 모르는 아집, 이런 것들로 인해서 생긴 병입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열려진 마음이 없으니까 닫혀진 마음속에서 폭발되는 병적 상황이 정서불안과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하나님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이 꽉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고 임금의 자리에 앉고 싶어 하고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죄입니다. 다윗 임금은 하나님께 노래하고 찬양하면서 시편 37편 5절에 ‘너희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했고 잠언서 16장 3절에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을 이루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만나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에 보니까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둠이 빛을 깨닫지 못하더라.”고 하십니다. 빛 되신 예수님이 오셨는데 심령이 어두운 사람이 예수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등장하는 소경에게 예수님은 눈에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합니다.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존재로 체득하지 못한 종교 지도자들이 소경의 엄마를 불러서 다그칩니다. 그 엄마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래서 소경을 불러서 또 물어봅니다. ‘너 눈뜨게 해 준 사람이 누구냐?’ ‘미안해요. 저는 눈 감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 분을 본 적이 없어요. 그 분의 인상착의를 몰라요.’ 그랬더니 종교 지도자들이 교회를 어지럽힌다며 내쫓습니다. 성 밖에 쫓겨난 그를 예수님이 찾아가서 만나주셨습니다. 소경은 뜬 눈으로 예수님을 발견하고 “주여 내가 진심으로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소경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력서, 출생증명서, 호적등본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인하여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결단하고 드디어 자기 몸으로 예수님을 섬기며 경배하는 삶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의식화와 신앙의 생활화가 예수님 앞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그렇습니다. 주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에게는 놀라운 신앙 사건이 일어나는데

1, 창조신앙입니다.
창조신앙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닷새 동안 이것저것을 만드신 후에 마지막 여섯 번째에 여러분을 만드십니다. 다섯 번의 연습을 통해서 걸작품을 만들었는데 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바로 여러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것 가운데 제일 잘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아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유는 이 땅에 창조한 것들 중에서 하나님을 닮은 것은 여러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좋아서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나온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 고백입니다. 창조신앙의 근본적인 핵심은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은 존귀한 자입니다.

2.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나를 고아같이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에 능력을 가지신 그분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하시는 그분으로 인하여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모세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넌 못한다 하지 말라 내가 되게 해 주마.” 여호수아가 두려워하며 떨 때에 “여호수아야! 내가 모세와 함께한 것을 보았지? 네 모세와 함께한 것처럼 너와도 함께하겠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강하고 담대합니다. 염려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 인생을 되게 하신다. 용기를 갖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은 마귀가 주는 올무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데 마음으로 사랑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분이 아니시라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하시고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3. 십자가 신앙입니다.
십자가 신앙이란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귀하게 만들었고, 사랑하시는데 ‘내가 실수했다. 내가 실패했다. 내가 허물과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고 하는 나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부끄러운 나 가증스럽고 썩고 냄새나는 나 내가 생각해도 속상한 나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허물과 죄 실수와 실패를 용서하십니다.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셨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죄와 허물로 만난 내가 치유할 수 없었던 우는 나를 예수의 보혈로 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하여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고 나의 실수와 실패를 나의 가증스럽고 썩고 냄새나는 것들도 다 깨끗이 용서하시고 나로 하여금 새 인생을 살도록 도우시는 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 사랑입니다.

4. 부활 신앙입니다.
우린 인생을 살아갈 때에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들을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시고 죄와 죽음과 음부의 권세를 끊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실패자로 살지 않게 하시고 죄로 매여 있지 않게 하시며, 저주에 갇혀 있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일어나서 세상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역사하시는 그 은혜가 부활의 신앙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더 이상 과거에 매여 있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속된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을 영접할 때에 여러분은 거룩한 여러분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현대 신학의 불신앙 조건 가운데 하나는 무엇이냐면 2000년 전에 기록된 성경적 표현들은 현대 과학적 사고에 맞지 않다. 그 때는 사람들이 미개했기 때문에 성경에 기적들을 기록한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 같은 것은 과장된 이야기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근본적인 구조 가운데 하나는 세계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기사와 기적 같은 것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고 하는 것이 현대 신학입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 분명히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예수님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우리 하나님께서 재확인해 주셨다고 합니다. 표적과 기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믿음의 디딤돌입니다. 믿음이 생기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신앙은 우리에게 신앙을 줍니다. 새 생명, 기쁨, 활력소를 주는 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창조신앙과, 임마누엘 신앙, 십자가 신앙과 부활 신앙, 이러한 기독교의 기본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부생활도, 자녀도, 사업도 인간관계도 다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지고 삶의 현장이 하늘나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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