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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성령의 은사들 Gifts of the Holy Sirit

본문

John Wesley

제목 : 성령의 은사들 Gifts of the Holy Sirit

The Holy Spirit and Power Clare Weakley

           
1.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들의 본질은 성서와 초대교부들의 글들 속에 나타나 있다. 이 교부들은 사도시대 후에 기록했다.
 
2.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원래의 약속은 예수에게서였다.
  1)마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보도한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
  2)베드로는 약속이 이루어진 바로 그 날에 진전된 설명을 했다. 베드로의 설명은 이렇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6-17).
  3)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보다 온전한 목록을 제시했다: “은사[charismata,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들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4-11). 
 
3. 따라서 우리는 사도적 교회에 주어진 주요 은사들, 혹은 영적인 선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1) 악령추방;
  (2) 방언으로 말하기;
  (3) 위험 피하기 - 피하지 못한다면, 멸망당할 수도 있는 위험;
  (4) 병자치유;
  (5) 예언 - 다가올 일을 미리 말하기;
  (6) 환상들;
  (7) 신적인 꿈들;
  (8) 영분별.
 
  1)이 가운데 일부, 특히 악령추방과 새 방언으로 말하기는 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하여금 복음의 능력과 타당성을 확신시키기 위해 주어졌다.
  2)병자치유, 다가올 일에 대해 미리말하기, 그리고 영분별은 주로 동료 기독교인들의 유익을 위해 주어졌다.
  3)모든 은사는 은사들을 체험했거나 증거 하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모든 핍박의 폭풍우를 뚫고 그들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하면서 뛰도록 도와주기위해 주어졌다.
 
4. 그 때 이래로,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입증하려고 했다:
  (1) 사도시대 이후로 초대교회에는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2) 이 은사들이 여전히 작용한다고 주장한 모든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바보이거나 악한들이었다.
  (3) 그리스도나 사도들은 어떤 기적도 일으키지 않았다.
  (4) 그들 역시 바보거나 악한, 혹은 둘 다였다.
 
5. 이점에 있어서 나는 이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가능한 자유로운 방식으로 밝히겠다. 이들에 대한 동의는 성서와 역사 모두를 무시하는 것이다. 사도시대 이후에도 성령의 은사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교회역사의 처음 300년간 교부들의 증언이 사용될 것이다.
 
6.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 당신은 거기에서 멈추는가? 이를 입증하기 위해 무슨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로마제국이 기독교화 되기 전에 기적들을 인용한다면, 그 후의 기적들은 왜 인용하지 않는가?”
 
7. 나의 대답은 로마제국이 기독교화 된 이후, 신앙과 도덕의 전반적인 타락이 교회를 감염시켰다는 것이다.
  1)제롬의 말처럼, “교회가 부와 권세를 얻은 만큼 자신의 미덕을 잃어버렸다.”
  2)크리소스톰 역시 똑 같은 이유를 말했다: “‘왜 기적들이 지금 일어나지 않는가? 왜 죽은 자를 일으키고 병을 치유하는 사람들이 없는가?’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크리소스톰은 그것은 당시에 신앙과 미덕과 경건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8. 성령의 초월적인 은사들이 2-3세기 이상 교회에서 존재한 것 같지 않다. 우리는 콘스탄틴 대제가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불렀던 그 치명적인 시기이후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거의 듣지 못한다. 그때부터 그는 기독교적 이상을 발전시킨다는 허망한 공상으로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성직자들에게 부와 권세와 명예를 쌓게 했다. 그때 이후, 성령의 은사들은 거의 대부분 그쳤다. 그 후에는 성령의 은사들이 매우 드물게 발견되었다.
 
9. 이것의 원인은 온 세상이 기독교화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은사들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이것이 통속적인 해석이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비참한 잘못이다.
  1)그 은사들 상실의 진정한 이유는 소위 기독교인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방인들처럼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지 못했다.
  2)인자가 자신의 교회를 살펴보았을 때, 지상에서 신앙을 찾기 힘드셨다. 이것이 그 시기 이후 성령의 초월적인 은사들이 교회에서 발견되지 않은 진정한 이유였다. 기독교인들이 이방인처럼 되어, 단지 죽은 형식만 남았기 때문이다.
 
10. 따라서 이 신앙과 거룩함이 거의 상실되었을 때,
  1)메마르고 형식적인 정통주의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이 갖지 못한 은사들은 무엇이든 비웃기 시작했다.
  2)그들은 성령의 모든 은사들을 광기 혹은 기만이라고 헐뜯으며 의심했다. 그 결과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들은 곧 초대교회에서 사라졌다.
 
11. 그러므로 기적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들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바보이거나 무뢰한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1)만일 기적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기적들이 일어났다고 믿는 바보들일 것이다.
  2)만일 기적들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일어났다고 보도했다면, 그들은 무뢰한들일 것이다.
  3)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들과 능력들이 사도시대와 함께 끝났다는 주장은 초대교부들의 증언에 의해 그 타당성을 잃는다.
  4)그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어디에서 입증되는가? 그들이 바보이거나 무뢰한이라고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 증거가 없다면, 누구도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12. 사도시대 이후 약 50년이 지나서 글을 썼던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의 증언을 보자.
  1)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지금까지도 예언적인 은사들이 우리 가운데 존재한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은사를 소유한 남자들과 여자들을 볼 수 있다.” 그는 특히 모든 사람이 그와 함께 보는 가운데서 일어난 은사로서의 악령추방에 대해 주장했다.
  2)저스틴보다 다소 후대에 속하는 이레네우스(Irenaeus)는 은사를 긍정 한다: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의 이름으로 기적들을 행했다: 어떤 이들은 악령을 추방했고, 어떤 이들은 환상을 보았고, 어떤 이들은 미래 사건에 대해 예언했으며, 어떤 이들은 병자를 치유했다.” 또한 죽은 자들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그는 교회의 대 금식과 협력기도에 의해 필요한 경우 자주 일어났다고 선언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각종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하나님의 신비를 해석하는 것을 듣는다.”
  3)안디옥의 감독이었고 이레네우스와 동시대 인물인 데오빌로스(Theophilus)는 당시 악령추방이 교회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말한다.
  4)2세기 말까지 활약했던 터툴리안(Tertullian)은 이방 판사들에게 “그들의 법정에 악마에 붙잡힌 사람을 부르라고” 도전한다. 한 기독교인이 꾸짖을 때, 다른 곳에서 자신을 신이라고 불렀던 그 악령이 자신을 악령이라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 판사들은 그 기독교인의 생명을 취해가도 좋다.
  5)마이뉴티우스 펠릭스(Minutius Felix)는 3세기 초에 한 이방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악령들을 사람들의 몸에서 추방할 때, 그 악령들이 자신에 관해 고배하는 내용 대부분을 당신이 알고 있습니다.”
  6)마이뉴티우스보다 약간 젊은 오리진(Origen)은 성령의 현저한 인도하심이 여전히 있다고 선언하면서,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악령을 추방하고, 치유를 행하며, 장차올 일을 예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많은 사람들이 환상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고 말한다.
  7)다른 장소에서 오리진은 이렇게 말한다: “성령의 징표들은 예수의 가르침 초기에 나타났고, 그의 승천 후에 더 많이 나타났지만, 그 이후로는 줄었다. 하지만 말씀에 의해 영혼이 깨끗케 되고 그 말씀과 일치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지금도 여전히 나타난다.” 그는 또 다시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병자를 치유한다. 사람도 악마도 치유하지 못하는 감각의 상실, 광기, 그리고 수많은 악령들에게서 치유 받은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이것은 마술적인 방법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행하는 기도와 어떤 간구에 의해 일어난다.”
  8)3세기 중엽에 글을 썼던 시프리안(Cyprian)은 이렇게 말한다: “밤에 보는 환상 이외에, 낮에도 우리 가운데 순수한 아이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황홀경 속에서 하나님이 기쁘게 우리를 가르치고 교육하는 수단들을 보고 듣고 말한다.” 그는 또한 특히 악령추방을 언급하면서, 말하기를 “악령추방은 환자들의 신앙에 따라, 혹은 치유를 일으키는 그분의 은혜에 따라, 즉각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일어나기도 한다.”
  9)아노비우스(Arnobius)는 AD 303년에 이렇게 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흠 없고 빼어나게 거룩한 사람들에게 지금도 나타나신다. 그분의 이름은 악령을 도망가게 만들고, 악령의 선지자들을 벙어리로 만들고, 점장이에게서 대답할 능력을 빼앗으며, 교만한 마술가들의 행위를 좌절시킨다.”
  10)아노비우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한 락탄티우스(Lactantius)는 악령에 대해 언급한다: “기독교인들이 간구할 때, 악령들은 사람들의 몸에서 나오고, 자신들이 악령이라고 고백하며, 자기의 이름을 말하는데, 심지어 신전들에 있는 신들의 이름과 같기도 하다.”
 
13. 많은 사람들이 이 고대의 증언들과 함께 은사들을 고찰하면서, 그 증언들 하나하나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 의문들 가운데 몇 개를 아래에서 밝히고, 그것들에 답하려 한다.
  1)첫째는 이레네우스가 언급한 죽은 자들의 일어남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필요한 경우에 자주 일어났다. 교회의 대 금식과 협력 간구에 의해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그에게 다시 돌아갔고, 그 사람은 성도들의 기도에 합류했다.”
  2)이에 대한 반대는 죽은 자들이 일어나는 예가 현대 이방 문헌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3)둘째, 이방인들은 계속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4)셋째, 안디옥의 감독 데오빌로스는 그렇게 하도록 도전받았을 때, 죽은 자들 가운데 일어난 사람을 보여주지 못했다.
 
14. 이방 역사가들의 침묵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들이 그 사실에 대해 알고 있다 해도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이런 사례를 알았을 것 같지도 않다.
  1)나사로를 기억하는가? 이방인들은 죽음에서 일어난 기독교인을 죽이려 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례들은 그들에게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2)또한 이런 기적은 이방인들의 회심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일어났다. 이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매일 핍박당하고 살해당하지만 더 나은 부활을 소망하면서 견디는 기독교인들을 격려하고 확신시켜주기 위해 일어났다.
  3)이방인들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일인가?
 
15. 데오빌로스가 그 도전에 응답할 수 없었다는 것이 곧 이레네우스의 증언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레네우스는 데오빌로스보다 40년 전에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죽음에서 일어난 프랑스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40년 뒤까지 안디옥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레네우스는 이것이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든 교회에서 일어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것이 일어나기에 충분히 중요한 상황에서만 발생했을 것이다.
 
16. 설사 그것들이 정확하다 해도, 이 모든 반대들은 이레네우스의 특별한 증언을 어떤 면에서든 무효화시키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사도들의 시대 이후로 아무도 죽음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다.
 
17. 다음으로 토론의 대상인 은사는 병자의 치유이다. 치유는 종종 병자에게 기름을 부음으로써 행해진다. 이레네우스와 오리진이 이런 치유를 증언한다. 이에 대한 반대는 다음과 같다:
  (1) 기름은 그 자체로 치유로 설명되었다.
  (2) 그들은 결코 치유되진 않았다.
        치유에 대한 주장은 거짓이거나 기만이었다.
  (3) 이방인들도 치유를 가장한다.
  (4) 이방의 “기적들” 역시 기만이었다.
  (5) 치명적이고 절망적이라고 생각되는 질병이 기독교 신앙 없이도 종종 놀랍게도 자체적으로 치유된다.
 
18. 사실 우리는 자연과 기적 사이의 정확한 경계선을 모른다.
  1)어떤 질병은 자체적으로 치유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2)하지만 이런 주장의 요점은 이 세상에서 어떤 기적적인 치유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3)이런 주장은 예수님의 추종자들 뿐 아니라 예수님에게도 해당된다.
  4)이것은 어떤 기적적인 치유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예수님 역시 어떤 기적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려 한다.
 
19. 자연과 기적의 경계선을 모른다는 사실이 치유의 기적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을 설명하는 것은 간단하다. 나는 맹인의 시력회복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이것이다. 즉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말씀에 의해 시력을 회복했다면, 그것은 자연이 아니라 기적이란 사실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입증하는 설명을 할 것이다. 모든 이성적인 사람은 이 설명을 최고로 존중할 것이다.
 
20.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 동의할 수 있다:
  (1) 이방인들 가운데도 기적적인 치유가 있었다.
  (2) 기름은 그 자체로 어떤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
  (3) 우리는 자연의 경계들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허용한다고 해도 그것이 예수나 그의 사도들, 혹은 그 후에 살았던 사람들이 기적적인 치유를 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지는 못할 것이다.
 
21. 원시교회에서 있었다고 언급되는 기적적인 능력들의 세 번째는 악령추방이다. 이것에 관한 증언들은 매우 많고, 또한 분명하다.
  1)이 증언들에 대한 주된 반대는 추방될 악령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들을 주장하는 것은 거대한 과제이다. 하지만 이에 반대할 보다 단순한 방법이 있다. 세상에는 어떤 악령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함에 의해 그 문제 전체를 한 번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악령추방의 문제는 끝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통일성과 지혜를 의문시하는 것이다.
  2)약한 절충은 증세들은 용납하지만, 원인을 바꾼다. 따라서 이렇게 진술 된다: “악령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질병에 걸린 것이다. 그 증세들은 일반적인 간질의 증세들과 다름없다.
 
22.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해진다: 악령들의 고백과 말, 그리고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단지 일반적인 간질의 증세들에 불과한가?
  1)이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대답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제 2의 가설이 나타난다.
  2)이런 행위들은 그 행위에 관계된 사람들의 계략과 기만의 결과임에 틀림없었다.
  3)자 이것은 초월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여기에 그런 방법과 계략을 꾸며낼 수 있는 간질의 경련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23. 하지만 이것 역시 입증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항상 입증해야 한다.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입증하는 대신, 우리는 단지 추측할 뿐이다. 주된 추측은 초대교회 교부들이 이런 가장된 악령에 씌운 것들을 입증하는데 너무 성급했다거나, 기독교의 이상에 유익한 속임수를 지지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는 것이다.
 
24. 이런 반대들은 초대교부들 뿐 아니라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 역시 똑같은 강도로 공격했다. 이 능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보이거나 기만이라는 사실을 보이려는 시도에는 예수님도 포함된다. 이것은 모든 반대의 주장들을 손상시킨다. 따라서 이 은사에 대한 고대의 증언들은 확고하며 흔들리지 않는다.
 
25. 다음의 기적적인 은사는 예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언은 환상과 사람들의 비밀 발견하기, 장차올 일에 대해 미리 말하기, 또한 종교적 영적 황홀경을 포함한다. 이 은사에 관하여는 항상 종교적 지나침이 종종 언급된다. 터툴리안의 증언이 의심받는데, 그것은 몬타누스와의 관계 때문이다. 몬타니스트는 열광주의와 이단으로 고발 되었다. 따라서 몬타니스트와 관계된 사람들은 모두 의심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터툴리안을 무시하는 것이 시프리안의 증언마저 제거할 이유는 못된다. 시프리안에 따르면, “밤에 보는 환상 이외에 낮에도, 우리 가운데 순수한 아이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황홀경 속에서 하나님이 기쁘게 우리를 가르치고 교육하는 수단들을 보고 듣고 말한다.”
 
26. 비평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우리는 이런 이상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 이야기들의 일부는 위험과 시련의 시기에 교회의 훈련을 지지하기 위해 다듬어졌고, 또한 일부는 이런 비극적 형식으로 꾸며졌다.”
 
27. 우리는 교회에서 이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이 터툴리안과 이레네우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몬타누스가 태어나기 전에 이 은사를 선포한 사람은 요엘과 베드로였다. 그들로부터 다음의 말씀이 왔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28.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이 초기 설명들은 심지어 그것들이 언급되는 방식에서도 진실하다고 계속해서 생각한다.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하지 않다 해도, 시프리안은 진실하다고 생각했고, 신실한 마음으로 그것들을 언급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그 위험과 시련의 시기에 교회의 훈련을 지지하려는 그 목적을 위해 이런 종류의 일들을 행하셨다고 믿는다. 비평가들이 예언 은사의 거짓 성, 혹은 적어도 불가능성을 보일 때까지, 시프리안의 성격은 오점을 갖지 않는다. 즉 시프리안은 판단력 있는 인물일 뿐 아니라, 빼어난 통일성을 갖춘 사람이다. 결국, 이 기적적인 은사들이 사도시대 후에도 교회에 존재했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29. 가장 논쟁의 여지가 있는 성령의 은사는 방언이다. 이 은사는 초대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확실히 주장되었다. 그것은 이레네우스의 분명한 언급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교회에서 모든 종류의 방언으로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다.” 그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방언 은사를 갖고 있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그 은사를 갖고 있지 않았다.
 
30. 어떤 사람들은 방언이 사도들 이후 초대교회에서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이 은사는 어떤 특별한 경우에만 주어졌고, 그 다음에는 사도들로부터 철회되었다. 따라서 그들의 일반적인 목회에서는 방언이 없었다.”
 
31. 이런 경우와 터툴리안의 경우는 바울이 오래전에 했던 말을 입증할 뿐이다.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고전 12:29-30). 이 말은 맞다. 심지어 그 은사들이 가장 풍요롭게 주어졌을 때에도 이것은 맞는 말이다.
 
32. 다음에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교부도 방언은사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존하는 교부들의 글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상실된 글들과 비교하면 어떤가? 교회의 역사 가운데 처음 300년간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전혀 기록을 남기지 않았겠는가? 혹은 적어도 그들은 우리에게까지 내려오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
 
33. 방언을 사도시대에만 존재한 특별한 은사라고 주장하는 글을 쓴 사람들은 누구인가? 방언의 계속적인 존재에 대한 반대를 지지하는 6명의 니케아 후기 교부들이 누구인지 나에게 알려 달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교회에서 철회되었다는 것 외에 그것에 대해 감히 말하는 교부는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을 내게 보여 달라. 그러면 나는 모든 주장을 포기할 것이다.
 
34. 기적적인 은사들에 대한 반대들을 다시 살펴보면, 그것들이 결국 많은 잘못들을 결과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시 한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결코 자명한 이치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기록되지 않은 다양한 장소와 시대에 많은 것들을 행하신 하나님의 깊이와 지혜 속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행위들은 하나님의 자연적인 혹은 초자연적인 능력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정말로 많은 것들이 한때 가장 충분한 증거와 함께 기록되었을 수도 있지만, 수 천 년이 지난 지금 유실되었다.
 
35. 이것이 우리 앞에서 벌어진 경우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록하지 않은 채 새로운 방언을 말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기록은 세월이 흐르는 과정 속에서 상실된다. 그런 기록들이 상실되는 것은 단지 가능성 있는 일일 뿐 아니라, 확실히 그렇게 된다. 사도들이 여러 낯선 나라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당신은 이것도 알아야 한다. 요한은 소아시아에서, 베드로는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다른 사도들은 파티아, 메디아, 피그리아, 혹은 팜필리아 등지에서 원주민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했다. 어떤 나라에서 어느 사도가 이 은사를 활용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36. 기록되지 않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금언을 따르는 것은 어느 특정한 입장에 서는 것이다. 그 결과는 사도들이 그들의 계승자들과 같이 방언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도출시킨다.
 
37. 역사적인 잘못은 이 은사가 종교개혁 이래로 믿을만한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진술이다. 이 은사의 참된 출현이 기독교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38. 새로운 방언의 잘 알려진 사례는 프랑스의 위그노 교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 성령의 운동은 루이 14세의 많은 노력 후에 이루어졌는데, 그의 학자들의 펜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기병들의 검과 무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39.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들을 한데 묶어서 단지 하나로 그 모두를 판단한다. 즉 이렇게 말한다: 방언의 은사가 참되다면, 다른 모든 은사들도 참되다. 역으로 방언의 은사가 참되지 않다면, 다른 모든 은사들도 참되지 않다.
 
40.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경우의 법칙은 이렇다: “한 성령께서 자신의 뜻대로 모든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나누어 주신다.” 따라서 그것은 모든 사람, 모든 교회, 그리고 모든 신자들의 공동체에 주어진다. 성령께서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그 은사들을 나누어주시고 베풀어 주신다.
 
41. 그렇다면, 모든 교회들의 겉치레를 판별할 특별한 테스트는 없다.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은 특정한 곳에 방언의 은사를 주실 것이다. 당신과 내가 알던 모르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많은 이유를 알고 계실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항상 알지 못할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 하나님은 방언을 주는 것이 자신의 뜻이 아닌 곳에 많은 다른 은사들을 주실 수도 있다. 이것은 특히 모두가 한 마음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교회에 해당될 것이다.
 
42.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제안한 것을 어떤 한 방식에 따라 추적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서 존재했다고 주장된 몇 가지 종류의 은사들을 다시 살펴보고 그 주장에 대한 반대에 답한 것이다. 이제 모든 공정한 사람들이 그 증언들과 반대들을 조용히 숙고하며 판단할 차례이다. 가까이에 있는 자료를 검토해 봄으로써, 사도시대 이후 고대 교회에 그런 기적들이 행해졌는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34. 이것은 1749년 1월 4일 “코니어 미들턴 박사(Dr. Conyer Middleton)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토마스 잭슨(Thomas Jackson), ed. The Letters of The Rev. John Wesley, (London: The Epworth Press, 1931), vol. 2, p. 312ff.

44. 이 편지는 미들턴이 출판한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비판에 대한 답이었다. 그 작품은 진 대일(Jean Daille)의 “De usu Patrum”(1632)에 근거한 것이다. 웨슬리는 그의 저널에 이렇게 썼다: “나는 어떤 경우에 그 선한 사람이 하나님의 적들에게 저주를 했는지 곧 알았고, 또한 미들턴 박사가 기독교의 체제를 던져버리기 위해 그 작품을 폭넓게 사용했다는 사실을 곧 알았다.”
 
45. 웨슬리의 편지는 미들턴의 비판에 대한 직접적으로 대답하면서, 또한 오늘날 은사에 대한 비판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
  1)그 비판의 이론은 “온전한 것”이 왔기 때문에, 방언과 예언과 지식이 사라졌다(고전 13:8ff)는 것인데, 그 “온전한 것”은 신약성서를 가리킨다. 이 편지에서 웨슬리가 인용하고 있는 모든 고대의 근거들은 신약성서가 기록된 이후의 작품들이다.
  2)저스틴, 이레네우스, 터툴리안, 시프리안, 그리고 오리진 등 모두는 그들의 글에 신약성서의 책들을 인용한다. 여기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신약성서가 기록된 이후에도 이 은사들이 교회에서 계속되었고, 교회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46. 더욱이, 악마와 악령의 개념인 악마론은 바벨론 포로기에 페르시아 종교들과의 접촉에서 유대교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그런 용어와 개념의 사용은 과학 이전 시대에 예수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들을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1)웨슬리는 재빨리 이 주장을 반박했다. 악마와 악령이 없다면, 예수는 바보이거나, 그의 가르침은 기만이었을 것이다. 악령이 없다는 것을 알고도 가르쳤다면, 예수님의 교훈은 자신의 지식에 반하는 기만일 뿐이다.
  2)보다 정확한 것을 알지 못한 채, 부정확하게 가르쳤다면, 예수님은 바보였을 것이다.
  3)웨슬리는 예수님이 바보나 무뢰한이 아니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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