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성령의 역사와 표적에 대한 웨슬리의 이해-조종남박사
본문
성령의 역사와 표적에 대한 웨슬리의 이해
조 종 남
Ⅰ. 들어가는 말
최근에 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 운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받게 된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병을 고치며, 마귀를 내어 좇는 등 성령의 역사에 동반되는 현상이 성령의 역사의 외적 증거인가
아니면 인위적인 것인가? 이런 현상이 없다면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것인가?
교회 역사에서 위대한 일을 행한 지도자들에게는 늘 이런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 같다.
이에 우리는 18세기 영국의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한 위대한 전도자요
신학자인 존 웨슬리의 경험과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참고를 삼고자 한다.
Ⅱ. 웨슬리가 경험한 성령의 역사
1) 웨슬리의 성령 체험
웨슬리는 목사관에서 태어나 엄격한 청교도적인 경건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런 경건과 신앙생활은 그의 옥스퍼드(Oxford) 대학 시절, 신성클럽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그는 촉망을 받는 목사요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Fellow)로서, 미국 조지아에 선교사로 다녀왔다. 그러나 그는 활기가 없는 목사였다.
그러던 중,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이트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그는 자기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가 성령을 체험한 것이다. 그는 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738년 5월 24일 (수)
저녁에 나는 올더스케이트 거리에서 모이는 집회에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참석했다. 그 집회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서의 서 문』을 읽고 있었다. 오후 9시 15분 전쯤 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 마 음속에 역사하시는 변화를 말하고 있을 때 나는 내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 꼈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나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임을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죄인의 죄까지도 가져가 주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이 얻은 내심의 체험을 공개적으로 증거했 다….
집에 돌아온 후 여러 가지 유혹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그래서 소리를 치 니까 모두 달아났다. 그러나 유혹들은 찾아오고 또 찾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본즉 하나님은 그의 성소로부터 도움을 보여주셨다. 여기서 나는 나의 현재상태와 나의 과거상태가 서로 다름을 발견했 다. 과거에는 은혜 아래 있고, 또한 율법에 속하였으므로 비록 전력을 다해 싸웠는데도 패한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항상 승리하는 자다.
이런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웨슬리는 확신이 따르는 참 믿음(saving faith)을 갖게 되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웨슬리의 영적 감각(spiritual sensorium)이 열린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현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주관적으로 체험하며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웨슬리에 있어서 참 믿음은 진리에 대한 지적 동의일 뿐 아니라 전적인 신뢰요(trust) 신적 확신(divine evidence and conviction)이다.
스타키(Starkey)가 지적한 대로 이런 성령의 증거(역사)가 웨슬리의 신앙생활에 능력을 부여하였다. 웨슬리의 전도 사역은 힘차게 전개되어 나갔다. 그는 자기의 설교 사역이 올더스케이트에서의 체험 후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1725년부터 나는 설교를 많이 하였으나, 그 수고에 대한 열매를 거의 못 얻었다. 그러나 1738년 이후, 곧 올더스케이트에서의 신앙체험 후, 나의 설 교는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였으며, 나의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덤불 속 의 불처럼 역사하였다.” 청중은 모두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증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놀라운 사역을 함에 있어, 웨슬리 자신이 성령의 강한 역사를 거듭 체험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웨슬리가 그의 일지에 기록한 그의 체험의 일부를 들어보자.
1739년 1월 1일 (월)
웨스트리 홀 목사(웨슬리의 매부), 찰스 킨친 목사, 잉함 목사, 조지 휫필 드 목사, 허친스 목사, 내 동생 찰스 목사가 60여 명의 다른 형제들과 함 께 페터 래인에 서 갖게 된 애찬식에 참석했다. 새벽 3시경이었다. 우리가 계속 갈급하게 기도하 고 있을 때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위에 매우 강하게 임재하셨다. 그 권능 아래 많은 사람들은 넘쳐흐르는 기쁨으로 울부짖었 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 러졌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의 현 존 앞에서 그 위엄과 놀라움에서 약간 깨어나자마자, 우리는 한 목소리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 라고 부르짖었다.
1744년 12월 23일 (주일)
나는 이상하게 생기가 없었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 다음날, 나는 아직도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러나 저녁에 내가 스노우필드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동안, 내 기억으로는 이전에 본 적이 없는 빛과 능력을 발견했다.
1744년 12월 25일 (화)
나는 아침에, 하나님의 은혜로, 어제와 같은 영적 상태에서, 일어났다. 아 마도 8 시경,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두세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 그때 나는 하나님 면전에서 심한 두려움(awe)과 평안함(tender sense)을 느꼈다. 이 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 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온종일 하나님의 면전에서 보냈다.
2) 웨슬리의 사역에는 기사 이적이 동반했다
성령의 강한 역사는 그 후 웨슬리의 전도 사역에서도 거듭 거듭 일어났다. 이런 역사를 통하여 많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며, 신자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실의에 빠졌던 신자가 새로운 힘과 기쁨을 회복하고, 마음의 평강을 얻으며, 주를 찬양하게 되었다. 또는 병든 자가 치유를 받았으며, 마귀 들린 자가 고침을 받는 일들이 일어났다.
명실 공히, 웨슬리의 사역은 초대교회에서 보듯이 말씀의 전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웨슬리가 친히 기록한 몇 개의 예를 보기로 하자.
1739년 6월 15일 (금)
저녁에… 우리는 계속 찬송을 불렀다. 나의 마음은 어딘지는 모르나 공동 서신과 히브리서의 많은 구절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께 직접 지시해주 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고 성서를 열었더니 히브리서 10:19-22의 말씀을 주셨다.
내가 사람들에게 ‘새롭고 살아 있는 길'(a new and living way)을 통해서 가장 거룩한 ’성소‘에 들어오라고 열심히 죄인들을 초청하고 있을 때, 많 은 사람들이 눈 물과 큰 소리로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푹 쓰러져서 그 자리에서 몸에 힘이 빠진 상태로 누워 있었다. 어떤 사람 들은 몹시 떨고 진동을 했다. 어떤 이들은 너무나 비탄에 젖은 나머지 육체 의 모든 부분에 일종의 격동적인 동작을 보였으므로 4-5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했다. 나는 많은 히스테리 환자와 간질병 환자들의 발작 증세를 보아왔으나, 그러나 이들은 그러한 증세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즉시 믿음이 약한 자들이 마음에 상처받지 않도록 기도했다.
1741년 5월 10일 (월요일)
나는 죄인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다. 그 동안 별로 피곤을 몰랐다. 그러 나 그 후 이어진 애찬식 때, 나는 허리와 머리가 아플 뿐 아니라 몸에 열이 계속해서 있었다. 기도를 하려고 하니, 기침이 몹시 나서 말을 할 수가 없 었다. 바로 그 순간, 나 에게. “믿는 자들에게는 이적이 따르리라.”(막16:17) 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큰 소리로, 주여 나의 믿음을 도우소서 (increase my faith), 당신의 은총의 말씀을 입증하소서 하고 주님께 구했 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 나의 아픔은 사라졌고, 열도 떨어져서 기운 을 차리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오랫동안 아픔과 약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 주님,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1756년 4월 6일 (화요일)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주 어두운 밤이었다. 나는 나무 조각에 발이 부딪혀 아파서 넘어졌다. ‘아- 나는 지금부터 여러 주 동안 말씀을 듣지도 설교하지도 못 하겠구나’ 생각했다. 그 순간 나의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 있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라, 그리하면 너는 일어서리라.” 그래서 나는 뛰어 일어나며, 내 발을 뻗치면서 외쳤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내가 당 신의 이름을 부르오니, 나로 하여금 일어서게 하시옵소서.” 그 순간, 통증이 멈추고, 나는 일어섰다. 그 후 나의 발은 전처럼 아주 튼튼해졌다.
1757년 5월 5일
토마스 B 라는 사람이, 3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심한 파상을 입고 죽 을 뻔했다. 그러나 우리 교회(societies)에서 성도들이 기도하는 가 운데, 그는 순간적으로 고침을 받아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1740년 5월 21일 (수)
저녁에, ‘웃는 귀신’ 들린 여자가 나타나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다. 모든 사람의 주의가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외식을 부리는 사람이 아닌 것을 모두가 아는 바 이다. 그렇게 포악하게 악령에 사로잡혀 날뛰는 것을 일찍 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가끔 웃다가 또 거의 까무러친다. 그리고는 이내 큰 소리로 저주를 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 그러다가, 발을 구르 며 야단을 한다. 그때 그녀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사오 명의 사람이 달려 들어도 그녀를 억압하기가 힘들었다. 말할 수 없이 강했다. … 그러나 마침 내 그녀가 그리스도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하자, 그녀를 괴롭히던 난폭함은 사라졌다.
Ⅲ. 성령의 내적 사역과 외적 표적
1) 성령 역사에 대한 반론과 웨슬리의 관심
이런 사역이 일어남으로 인하여, 웨슬리의 복음 증거는 능력 있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열광주의자’라고 비난을 받았다. 왜냐하면, 당시의 영국 교회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나 성령의 기사 이적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유명한 정통주의 신학자요 브리스톨의 감독인 버틀러(Bishop Butler)는 웨슬리에게, “당신이 집회에서 사람들이 발작을 하고, 그러면 당신이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들었는데… . 성령의 기적적인(특수한, 일시적인) 계시나 은사들이 있는 것처럼 행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며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당신은 이 지역에서 설교하지 말고 떠나라”고 충고했다.
이런 반대자는 버틀러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리치필드의 감독은 출판물까지 발행하여 웨슬리의 주장은 열광주의자들의 교리이고 무용한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성령이 신자 안에서 내주하며, 내적 증거를 한다고 주장한다든가, 또는 성령에 의하여 기도하고 설교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성령의 기적적인(비정 상적인) 은사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인데, 이런 사역은 사도시대와 초대교회 에만 속한 것이다. 따라서 말세(오늘날)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행 하는 것은 헛된 일이며, 이는 열광주의자들의 교리이다.
타이어맨에 의하면 이런 반대는 깁슨 감독(Bishop Gibson), 와버튼 감독(Bishop Warburton)등 여러 지도자들로부터도 받았다. 일반 신자들의 반대도 적지 않았다. 이런 논란 속에서 웨슬리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 1739년 7월 7일의 일지에서, 그가 동료목사와 상의한 것을 볼 수 있다.
1739년 7월 7일 (토)
나는 휫필드 목사와 하나님의 내적인 역사와 동반되는 외적인 표적(쓰러 지는 일)에 관하여 의논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는 그가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주로 사실과는 다른 엄청난 거짓된 소문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그분 자신이 보다 더 잘 알게 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휫필드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는 모 든 죄인들을 연단 앞으로 초청했을 때, 그분 가까이에 있던 네 사람이 거의 동시에 쓰러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움직이지도 않고 의식도 없이 누워 있었고, 두 번째 사람은 몹시 덜덜 떨었고, 세 번째 사람은 소리 는 내지 않고 끙끙 앓으면서 온 몸에 강한 발작적인 움직임(진동)을 보였으 며, 네 번째 사람은 똑같은 발작적인 동작을 하면서 눈물과 큰 소리로 하나 님께 기도했다. 이때부터 우리는(웨슬리와 휫필드) 모두 하나님께서 역사하 시는 대로 수용하기로 하였다.
웨슬리는 교인들의 양육을 위하여 표준 설교집을 출판하였다. 그는 설교집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가 성서에서 발견한 하늘로 가는 길에 관하여 이 설교에 적절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 설교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구원의 길과 인 간이 꾸며낸 길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었다. 나는 참되고 성서적이면서 경험적인 신앙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 설명에 있어서 신앙의 참된 부분 은 조금도 삭제하지 않고, 또 거짓된 것을 덧붙이지도 않으려 했다. 이러한 노력 속에 내가 특별히 바라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첫째, 이제 방금 천국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곧 하나님의 역 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천국 가는 길에서 돌이키게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을 형식주의와 단순한 외적 종교에서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외적 종교는 마음의 종교를 세상 밖으로 축출시켜 왔다.
그리고 둘째, 마음의 종교, 곧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율법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여 악마의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웨슬리는 냉랭한 형식주의와 무분별한 열광주의를 경계하며, 성서적이고 경험적인 기독교를 긍정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심 속에서 웨슬리는 정통신학자들과 열광주의자들을 향한 충고와 경고를 하기에 이른다.
2) 정통신학자들에게 대한 충고
당시의 소위 정통신학자들에게 답하면서, 웨슬리는 지금도 복음이 권능으로 전파되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살고 있다면, 성령은 특별한 극적인 은사 곧 카리스마타(charismata)를 나타낸다고 믿었다.
또한 성령의 그러한 역사가 초대교회, 곧 성서시대에 성행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은 사도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그런 역사가 현재 나타나지 않는 것은 교회가 콘스탄틴 시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세속적인 로마인들이 교인이 되어, 신앙에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는 성령이 후퇴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이 식어져 있는, 즉 그저 죽은 신앙 형태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령께서는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런 기사와 이적들이 정지되고 있음은 교회가 평온과 안전 속에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안위와 명예로 믿고자 하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오는 비난과 공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성령의 감동(inspiration)과 증거(witness)는 필요한 것이며 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성령의 감동이라 함은, 성령께서 내적으로 도우시는 역사로서, 이를 통하여 사람의 이해와 의지를 깨우쳐주며, 사람의 연약함을 도우며, 신자를 위로하며, 정결케하며, 성결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회개하거나, 믿음으로 거듭나는 일이나, 성화와 성장,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
이런 성령의 증거는, 웨슬리에 의하면, 직접적이며, 사람이 인식할 수 있도록 체험하는 것이로되,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신자에게 역사하는 성령은 같은 성령이지만, 성령은 자신의 뜻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역사하신다. 어떤 때에는 강한 능력으로, 또 어떤 때는 조용히, 보이지 않게 역사하신다. 웨슬리는 말한다. “성령으로 하여금 자신의 방법대로 행하시게 하시오. 성령은 당신보다 더 현명하시며, 그분은 모든 일을 잘 행하실 것이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적으로 이루어진 사역의 내용이 하나님께러부터 온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후자가 본질적인 것이라면, 전자는 우연적인 것(acciderntal)으로 그 표적이 다양하다. 본질적인 것이 없는 현상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내용은 하나님께러부터 오는 것이라야 한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열광주의자들을 경계하기에 이른다.
3) 열광주의자들에 대한 경계
당시의 열광주의자들은 나타나는 현상과 표적에 치중하여, 은혜의 수단(교회 출석, 성례전<세례와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 또한 성서를 읽고 상고하는 일들)을 무시했다. 대로는 입신함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고 간주하며 정숙주의(Quietism)에 빠졌다. 더욱이, 웨슬리는 때로는 마귀의 역사로 흡사한 기적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이에 웨슬리는 “은혜의 수단”이라는 설교를 거듭하면서 그들의 그릇됨을 지적하면서 시정하려고 했다. 또한 “신자 안에 있는 죄”라는 설교를 하면서 그들의 그릇된 구원관을 시정하려고 애썼다. 웨슬리는 그의 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1741년 1월 11일 (주일)
나는 마귀의 권능도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경우를 경험했다. 방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던 존스 부인(브리스톨 집회소의 회원)이 성서를 읽 으려고 성서를 집더니, 갑자기 성서를 던져버리고는, 말하기를 “나는 충분히 착하단 말이에요. 난 더 이상 절대로 성서를 읽거나 기도하지 않을 거야.”라 고 했다. 내가 왔을 때에도, 그녀는 같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난 항상 죄로 가득 찬 사람으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죄를 짓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제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내가 선량한 기독교인이란 것 말이에요. 나는 내 일생에 남에게 해되는 일은 한 적이 없단 말이야. 지금보다 더 착 해지려고 바랄 것도 없단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같은 소리를 수없 이 말하면서, 오만과 거짓의 악령이 그녀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다음날 12일(월)에 나는 “치유받기 원합니까?”라고 물었다. 존스 부인은 “나는 온전한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그러나 구원받기 원합니까?”라 고 물었다. 그녀는 “나는 구원받았어요. 고민할 거리가 없단 말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존스 부인이 몸과 마음이 가장 격렬한 고뇌 속에 빠져 있 음을 식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몹시 땀을 흘리면서도, 몹시 냉담한 태 도로 조금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자, 존스 부인은 못 봐줄 정도로 노발대발하더니, 곧 죽은 사람처럼 푹 쓰러졌다. 몇 분이 지나자 그녀는 다시 소생하여 우리 와 함께 기도했다. 우리는 그녀를 당분간은 조용히 놓아두고 떠났다.
12일(월)에 존스 부인은 종일 격렬한 고뇌 가운데 사로잡혀 있었다…. 화 요일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려고 찾아왔다. 그녀는 찾아온 사람마다 그 들이 실제로 지은 죄나 마음으로 지은 죄를 다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들이 죄 지은 내용을 너무나 면밀히 잘 알아 맞히니까, 몇몇 방문객들은 올 때보 다 더 빨리 도망가 버렸다.
오후에 남편인 존스 씨가 킹스우드로 사람을 보내어 나를 불러오게 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웨슬리 목사님은 오늘밤에 오시지 못하시고 내일 아침에 오실 거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니, 하나님 스스로가 역사해 주 실 거에요. 내일 아침 6시 이전에 저는 치유받을 거에요”라고 했다.
존스 부인은 가만히 누워 있더니, 아침 6시 15분쯤 입을 열고 “당신(남 편)이 평안할지어다.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눅 10:5) “하나님의 평화가 나 의 영혼에 오셨도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욥 19:25) 나는 안다.”라 고 말했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의 입은 주님의 찬양으로 가득 찼고, 그녀 의 말은 주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에 관한 것뿐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웨슬리는 나타나는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한 바가 있다.
1743년 3월 12일 (토)
나는 두 번째 전도 여행을 끝마쳤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두 가지 문제를 특별히 조사했다. 첫째, 지난 주 거의 매일 밤마다 설교하는 동안 큰소리로 부르짖는 사람들의 경우에 관한 문제이고, 둘째, 우리를 떠나가 버린 사람 들의 숫자와, 떠나간 이유와 원인에 관한 문제이다.
전자의 경우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1) 그들 모두는 (내 생각에는 예외 없이) 완전히 건강한 사람들로서, 한 번도 발작을 해본 적이 없었으나, 마침내 이러한(넘어지는) 현상을 체험한 다는 사실.
(2)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든지, 혹은 들은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동안에, 이러한 현상은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사람들 각자에게 순간 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
(3) 사람들은 쓰러지는 순간에, 몸에 힘은 완전히 빠지고, 격렬한 고통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사실.
사람들은 (3)의 현상이 일어날 때 그 현상을 각자 다른 방법으로 표현했 다. 어떤 사람은 마치 칼로 그들의 내부를 찌르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마치 아주 무거운 짐이 그들 위로 내려 누르고 짜서 땅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심히 목이 졸려 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가슴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렸으며, 또 다른 사람은 마치 심장이, 모든 내부가, 몸 전체가 조각 조각 으로 찢겨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3)의 징후를 나는 어떤 자연적인 원인으로 돌릴 수도 없고, 또한 하나님의 영(성령)의 영향으로 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스도 에게로 올 때에, 사탄이 그들을 찢어버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 탄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탄식으로 발하게 함으로써, 공포에 싸인 사람들 을 놀라게 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하려고 획책하는 것 같다.
(4) 사람들은 육체뿐 아니라 마음도 여러 모양으로 영향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왜 이러한 영향을 받게 되는지 그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이 러한 것 도한 교활한 악령의 짓이라고 본다. 이 악령은 가능한 한 많은 사 람들을 의도적으로 어리둥절하게 하고 혼동하게 함으로써 악령의 계획을 폭 로하지 못하도록 한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분명하고도 특별한 설명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souls)을 찔러서, 그들의 외적인 죄와 마찬가지로 내적인 죄가 무엇인가를 확신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치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느낌으로써, 하나 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비난자인 사탄이 큰 권능 을 가지고 이와 같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말하며 또한 영원히 파멸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때에 사람들을 순간적으로 사로잡게 되는 여러 가지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억지로 크고 비참한 소리를 지 르도록 한다.
우리는 위의 (1)-(4)항목까지 본 대로, 웨슬리는 넘어지는 현상이 성령의 역사로 되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로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려는 사탄의 역사로 되어지는 경우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타나는 현상에 대하여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759년 11월 25일 (주일)
오후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와 함께하셨다. 그런데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려는 것보다는 위로함을 주시기 위한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 심이 나타나는 방법이 전에 내가 이곳을 다녀갔을 때와는 현저하게 다름을 보았다. 이제는 입신하는 사람도, 울부짖는 사람도, 넘어지는 사람도, 진동 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몇 사람만이 몹시 떨었으며, 나지막하게 말하는 소리만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풍부한 화평”(시 37:11)으로 생기가 넘치게 외었다.
위험한 것은 울부짖음, 진동, 환상, 입신 등과 같은 현상이 우리의 내적인 역사(변화)에 필수적인 것이라 하여, 이러한 현상 없이는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여, 특수한 현상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다. 또다른 위험은 아마도 이 러한 특별한 현상을 너무 과소평가하든지, 전적으로 정죄하든지, 또한 하나 님의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의 역사에 방해가 된다고 상상하 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진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급작스럽고 강하게 역사하셔서 그들이 죽 어야 마땅한 죄인들임을 확신시켜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에 대한 자연 스러운 결과는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울부짖거나, 강하게 육체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다.
(2) 믿는 자들을 강건하게 하시고 용기를 북돋아주시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다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꿈으로, 입신과 환상으로 은총을 내리시는 것이다.
(3) 위에 나타난 일에 있어서도 어떤 경우에는,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자 연적으로 일어난 것인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일어난 것인지를 혼동하곤 한 다.
(4) 사탄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기 위하여 이러한 현상을 모방하여 흉내를 내는데, 사탄의 의도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the whole work)를 불 신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사탄이 흉내를 낸다고 해서 하나님 역사의 전부를 포기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며, 또한 동시에 하나님 역사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처음에 이러한 역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 임을 확실히 믿었다. 오늘날에는 부분적으로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역사가 어느 정도 순수한가 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이며, 그리고 그 역사가 불순한 점이 섞였는 지, 또한 타락한 것인지 식별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가장하는 사람이 있다 는 것을 가정해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실제로 그렇지도 않은 일을 보고 느 낀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한 하나님의 영(성령)의 권능에 진정 으로 압도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나 진동하는 동작을 흉내 내는 사람도 있 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진정한 역사 를 경시하거나, 혹은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림자가 본지를 멸시할 수 없는 것은, 위조품이 진짜 다이아몬드를 멸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사탄이 우리가 보게 된 환상을 역이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만의 죄를 짓게 하는 호재(好材)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리는 오로지 자만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겸손한 사랑 외에는 하나님에게 아 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스스로 작은 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 다. 그렇다고 해도, 환상을 일반적으로 경시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비합리적 이요 비기독교적이다.
위에서 본 웨슬리의 글에서, 그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비한 은혜를 과장하거나, 영적인 무지로 인간의 감성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영적 흥분과 환상에 빠지는 신신비주의(Neo-mysticism)를 경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리는 나타나는 영적 현상과 표적이 하나님께로 오는 것인지, 마귀에서 오는 것인지를 분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설교 “성령의 증거(Ⅰ)”와 “성령의 증거(Ⅱ)”, 그리고 “우리 영의 증거”라는 설교에서 이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 설교들에서 그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증거 없이는 신자생활에 활력소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모든 신자가 누릴 특권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바로 이런 점에 있어서 웨슬리는 정통적인 신학자, 냉랭한 형식주의자들의 무감각함을 비판하였다.
웨슬리가 말하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란, 우리 영혼에 나타나는 하나의 내적 인상(inward impression)으로써, 신자는 이를 통하여 성령이 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위에서 지적했듯이, 이 직접적인 증거가 하나님께로서 나온 것인지를 분별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내적 증거에 동반하는 외적 표적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것이며 마귀도 때로는 기이한 일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객관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곧 성령의 간접적인 증거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웨슬리는 분명히 열광주의자들과 구분되며, 동시에 신자들이 무분별한 열광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간접적인 증거로 웨슬리는 성서의 말씀을 들고 있다.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성서에서 이탈한다면, 아니 성서 본문의 의미를 그 문맥에 나타난 대로의 분명한 문자적 의미에서 이탈시킨다면, 여러분은 어느 때나 열광주의에 빠질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성서는 우리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권고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는 기독론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성령에 의하여 행동하셨다면, 성령의 역사와 증거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에 부합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739년 6월 22일(금)
오후에 나는 피시폰즈(Fishponds)에서 설교를 했으나, 내 안에 생명도 활 기도 없었기에,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제쳐두고 추수 때 다른 일꾼들을 보 내시지 않나 하는 의심이 부쩍 들었다. 나는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집회 에 참석하여 연약한 상태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 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 4:1)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청중들에게 모양으로나, 소문으로나, 자신들의 느낌으로나 다른 사 람의 말을 듣고 성령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그들이 본 꿈이나, 환 상이나, 계시로도 성령을 판단치 말며, 또한 그들의 몸에 나타나는 어떤 현 상이나 비탄의 모양으로도 판단치 말라고 했다. 이러한 것들은 그 자체가 애매하고 논란의 대상이 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되어진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단순하게 믿을 수도 없으며 비난받을 수도 없으나 다만 “율법의 증거와 말씀”(사 8:20)에 따라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참 영의 역사와 증거는 회개와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나는 일에 따라야 한다. 또한 성서가 말하는 대로 성령의 증거에는 겸손과 기쁨, 평강,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 증거에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선한 양심과 성령의 열매가 있어야 한 다.
따라서 성령의 증거를 타당한 확신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와 간접적인 증거가 공히 있어야 한다고 웨슬리는 강조한다.
Ⅳ. 요약과 결론―관용의 정신
웨슬리는 성령의 역사를 중요시하고 강조했다. 그는 올더스케이트에서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확신 있는 신자가 되었으며, 그의 사역에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가 이끈 18세기 영국 교회에서의 부흥운동, 아니 전 세기에 걸친 복음적 부흥운동은 분명한 성령의 역사였다.
웨슬리는 성령의 강한 역사를 체험했다. 이런 성령의 내적 역사는 기사 이적과 같은 기이한 현상도 동반했다. 그러므로 한편 웨슬리는 오해와 비판도 받았다. 특히 성령의 기사 이적은 사도시대로 종료되었고, 현재는 없다고 생각하는 당시의 정통주의 신학자들과 영국 교회 신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며, 열광주의자로 오해받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웨슬리는 성서가 인정하는 성령의 기사 이적은 현재도 있다는 것을 교부들의 글과 자신의 경험을 들면서 변호했다. 웨슬리는 초대교회가 보여주었듯이, 복음이 능력으로 전파되며 진실한 믿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지금도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들, 곧 카리스마타(charismata)는 나타난다고 믿었다. 웨슬리는 오늘날 이런 표적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교회의 신앙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성령의 역사가 멈춘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사랑이 차디차게 식었고, 신앙이 죽은 상태로 남아 있는 신자들 안에서는 그런 역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참 믿음이 있는 곳에는 지금도 그런 은사로 역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오늘의 신학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충고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웨슬리가 체험했고, 역사에서 입증되었듯이,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 없이는 신앙의 확신과 박력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와 철학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철학에는 힘이 없다. 종교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은 확신에서 오는 것이다.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 없이는 하나님과의 산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지적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에서 나타난다.
이와 같은 각성은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 운동에서 메아리치고 있음을 본다. 로잔 운동은 함께 모여 세계선교의 대과제를 인식하고, 성서의 빛 아래서 신학적 입장을 정립하며, 오늘의 시대에 적응성 있는 선교방법을 모색하고, 온 교회가 협력하여 세계복음화에 헌신하자고 다짐하는 데서 시작된 운동이다. 이 대회는 여러 교회가 함께 협력하는 기초로서 유명한 로잔 언약을 발표했다. 그리고 1989년에 마닐라에서 제2차 대회를 가졌다. 이 대회에는 170국가에서 약 3,000명의 지도자가 참석했다. 그리고 로잔 언약을 보완하는 마닐라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The Whole Gospel)의 선포에는 기사 이적이 동반됨을 인지했다.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하며, 이는 사탄에게서의 해방, 곧 하나님 능력의 나타냄을 부분적으로나마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을 인격적으로 체험한 진실한 신자는 모두가 긍정하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핀 대로, 웨슬리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은혜의 수단(The means of Grace)을 부정하는 열광주의자와 정숙주의자들을 경계하며, 신자는 성령의 정상적인 은사 곧 사랑의 은사를 힘써 구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웨슬리는 냉랭한 신앙을 갖고 있는 형식주의자들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지나친 열광주의자들을 경계하였다. 성령의 역사는 기적과 같은 외적인 현상을 동반하지 않을 때도 있을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또한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은 내적 역사이며, 외적 현상은 우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은혜의 경험도 강조했지만, 그의 신학의 최고 권위는 성서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말하기를, “나의 근거는 성서이다. 그렇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성서를 따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령의 체험, 곧 성령의 내적 증거도 모두 성서에 의하여 시험하여야 한다. “성서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계시가 참 하나님의 계시인지 아니면 그저 사람이 짐작한 계시인지를 가려내는 시금석인 것이다. 사람들이 율법에 호소하든 체험에 호소하든 모든 영(spirit)을 성서에 의하여 시험해보아야 한다.”
이 문제와 연관하여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는 웨슬리가 각자 다르게 체험을 하는 신자들에 대하는 관용의 태도이다. 웨슬리는 기독교의 교리에서 본질적인 것(essential)과 비본질적인 것(non-essential)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는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것을 고수했으나, 비본질적인 것, 곧 의견(opinion)에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동의’하고 관용의 정신을 발휘했다. 웨슬리가 은총론에서 그렇게 대립되었던 조지 휫필드의 서거에 즈음하여 행한 설교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각 곳에서 외친 그 위대한 성서적 교리들을 고수한다. 그러나 교리 들 가운데에는 보다 덜 본질적인 교리들도 있다. 이 본질적이 아닌 교리들 에 있어서는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들도 여러 세대 동안 의견이 분열되어 왔 다. 이런 일에 있어서는 그렇게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합의하도록 생각해 도 좋다. 아니 그렇게 생각을 하라. 그러나 한편 우리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중요한 교리들을 굳건히 붙들자.”
이런 관용적인 정신은 성령체험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과 태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 당시의 영국 교회 지도자들은 성령체험이나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 또는 신유나 기사 이적에 대하여 말하면, 도매금으로 열광주의자 또는 마술사라고 몰아서 비난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웨슬리는, 열광주의(Enthusiasm)의 성격이 어떤 것이며, 진실한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기사 이적과 신유의 역사들을 열광주의에서 오는 것으로 혼동하지 말라고 설명한다.
웨슬리는 1749년, “열광주의의 성격” (The Nature of Enthusiasm)이라는 설교를 출판하였다. 이어서 1755년, 1778년, 1789년에는 이를 소책자로 재출판했다. 또 그는 『편협한 생각을 조심하라(A Caution Against Bigotry), 『관용의 정신』(Catholic Spirit)이라는 설교를 출판했다.
여기에서 웨슬리는 우리가 배격해야 할 열광주의자는, 일반적으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나 영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상상이나 환상에 의존하여 광열(religious madness)에 빠지거나,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것인 양 말하는 그릇된 자들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은 진실하지만, 실수를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사람의 상상이나 꿈을 따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상상이나 환상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가져다 맞추는 과오를 번번이 범한다. 그러면서 또한 교회에 주어진 은혜의 수단들을 사용하지 않는 과오를 범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에서도 기적적인 능력과 표적이 따르는 것을 부정하지 말라고 했다. 따라서 이런 역사가, (1) 성서의 증거와 어긋나는가, (2) 그런 역사의 열매가 어떤 것인가, (3) 이런 역사를 들은 사람들의 나타내는 열매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면서 평하여야 한다고 했다. 웨슬리는 이런 헤아림 없이 무턱대고 기사 이적을 따르거나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를 열광주의로 보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는 바로 웨슬리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한 변호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이성주의와 유물론적 사고에 빠진 신학자들은, 자기 이성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모두 신비주의적이요, 열광주의라고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초월적인 하나님의 성령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들 속에 이성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신비적인 요소”가 있음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웨슬리가 말하는 대로 헤아림 없이 “기적적인 것”은 무조건 신비주의나 열광주의자들의 소행이고 마술을 쓰는 라고 하는 평가는 경솔한 일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그의 설교에서, 참 열광주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알지 못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지 말고, 일반적으로 들은 소문을 가지고 사람을 열광주의자라고 판단하지 말며, 남을 판단하는 은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또 하나의 열광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늘 말과 행동을 항상 조심과 두려움으로 하여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웨슬리는 비성서적인 열광주의에 빠져 자만의 죄를 짓는 것에 대해 경계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웨슬리는 양자간의 논쟁에서 신자들의 고집과 편협함을 경계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제자가 주님을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고 하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고 하신 말씀을 풀이하면서, 하나님의 일하는 사람이 나의 교회에 속하지 않았거나 내 의견과 다르다고 내 편이 아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방해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며, 일방적인 비방을 삼가라고 했다. 성도는 더욱 기도하고, 경성하여 일하면서, 피차간에 더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웨슬리의 ‘관용의 정신’을 반영하는 태도이다. 그는 중요한 교리에서는 양보가 없지만, 여러 의견에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동의하고’, 주님의 일에 협력하는 정신을 주장했다.
이 글을 마치면서, 웨슬리가 성령의 기적적인 역사에 대한 논증의 마지막에 기록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나는 성서가 약속한 것들을 기쁨으로 받아 행한다. 기독교에서 행해온 것을 와서 보라. 이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나는 이런 옛 그리스도 인들을 (그들의 실족함이 있었다 해도) 더 존경한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별로 순수한 기독교에 대한 것을 보거나, 쓴 글을 읽거나,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소위 현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런 일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지하면서도, 이에 대한 깊은 선입관을 갖고, 그는 열광주의라고 하면서 반대한다. 무엇 때문인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이나 나 자신을 초대 교부들과 같은 그리스도인들로 만드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조 종 남
Ⅰ. 들어가는 말
최근에 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 운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받게 된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병을 고치며, 마귀를 내어 좇는 등 성령의 역사에 동반되는 현상이 성령의 역사의 외적 증거인가
아니면 인위적인 것인가? 이런 현상이 없다면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것인가?
교회 역사에서 위대한 일을 행한 지도자들에게는 늘 이런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 같다.
이에 우리는 18세기 영국의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한 위대한 전도자요
신학자인 존 웨슬리의 경험과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참고를 삼고자 한다.
Ⅱ. 웨슬리가 경험한 성령의 역사
1) 웨슬리의 성령 체험
웨슬리는 목사관에서 태어나 엄격한 청교도적인 경건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런 경건과 신앙생활은 그의 옥스퍼드(Oxford) 대학 시절, 신성클럽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그는 촉망을 받는 목사요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Fellow)로서, 미국 조지아에 선교사로 다녀왔다. 그러나 그는 활기가 없는 목사였다.
그러던 중,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이트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그는 자기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가 성령을 체험한 것이다. 그는 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738년 5월 24일 (수)
저녁에 나는 올더스케이트 거리에서 모이는 집회에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참석했다. 그 집회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서의 서 문』을 읽고 있었다. 오후 9시 15분 전쯤 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 마 음속에 역사하시는 변화를 말하고 있을 때 나는 내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 꼈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나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임을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죄인의 죄까지도 가져가 주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이 얻은 내심의 체험을 공개적으로 증거했 다….
집에 돌아온 후 여러 가지 유혹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그래서 소리를 치 니까 모두 달아났다. 그러나 유혹들은 찾아오고 또 찾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본즉 하나님은 그의 성소로부터 도움을 보여주셨다. 여기서 나는 나의 현재상태와 나의 과거상태가 서로 다름을 발견했 다. 과거에는 은혜 아래 있고, 또한 율법에 속하였으므로 비록 전력을 다해 싸웠는데도 패한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항상 승리하는 자다.
이런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웨슬리는 확신이 따르는 참 믿음(saving faith)을 갖게 되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웨슬리의 영적 감각(spiritual sensorium)이 열린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현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주관적으로 체험하며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웨슬리에 있어서 참 믿음은 진리에 대한 지적 동의일 뿐 아니라 전적인 신뢰요(trust) 신적 확신(divine evidence and conviction)이다.
스타키(Starkey)가 지적한 대로 이런 성령의 증거(역사)가 웨슬리의 신앙생활에 능력을 부여하였다. 웨슬리의 전도 사역은 힘차게 전개되어 나갔다. 그는 자기의 설교 사역이 올더스케이트에서의 체험 후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1725년부터 나는 설교를 많이 하였으나, 그 수고에 대한 열매를 거의 못 얻었다. 그러나 1738년 이후, 곧 올더스케이트에서의 신앙체험 후, 나의 설 교는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였으며, 나의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덤불 속 의 불처럼 역사하였다.” 청중은 모두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증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놀라운 사역을 함에 있어, 웨슬리 자신이 성령의 강한 역사를 거듭 체험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웨슬리가 그의 일지에 기록한 그의 체험의 일부를 들어보자.
1739년 1월 1일 (월)
웨스트리 홀 목사(웨슬리의 매부), 찰스 킨친 목사, 잉함 목사, 조지 휫필 드 목사, 허친스 목사, 내 동생 찰스 목사가 60여 명의 다른 형제들과 함 께 페터 래인에 서 갖게 된 애찬식에 참석했다. 새벽 3시경이었다. 우리가 계속 갈급하게 기도하 고 있을 때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위에 매우 강하게 임재하셨다. 그 권능 아래 많은 사람들은 넘쳐흐르는 기쁨으로 울부짖었 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 러졌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의 현 존 앞에서 그 위엄과 놀라움에서 약간 깨어나자마자, 우리는 한 목소리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 라고 부르짖었다.
1744년 12월 23일 (주일)
나는 이상하게 생기가 없었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 다음날, 나는 아직도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러나 저녁에 내가 스노우필드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동안, 내 기억으로는 이전에 본 적이 없는 빛과 능력을 발견했다.
1744년 12월 25일 (화)
나는 아침에, 하나님의 은혜로, 어제와 같은 영적 상태에서, 일어났다. 아 마도 8 시경,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두세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 그때 나는 하나님 면전에서 심한 두려움(awe)과 평안함(tender sense)을 느꼈다. 이 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 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온종일 하나님의 면전에서 보냈다.
2) 웨슬리의 사역에는 기사 이적이 동반했다
성령의 강한 역사는 그 후 웨슬리의 전도 사역에서도 거듭 거듭 일어났다. 이런 역사를 통하여 많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며, 신자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실의에 빠졌던 신자가 새로운 힘과 기쁨을 회복하고, 마음의 평강을 얻으며, 주를 찬양하게 되었다. 또는 병든 자가 치유를 받았으며, 마귀 들린 자가 고침을 받는 일들이 일어났다.
명실 공히, 웨슬리의 사역은 초대교회에서 보듯이 말씀의 전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웨슬리가 친히 기록한 몇 개의 예를 보기로 하자.
1739년 6월 15일 (금)
저녁에… 우리는 계속 찬송을 불렀다. 나의 마음은 어딘지는 모르나 공동 서신과 히브리서의 많은 구절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께 직접 지시해주 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고 성서를 열었더니 히브리서 10:19-22의 말씀을 주셨다.
내가 사람들에게 ‘새롭고 살아 있는 길'(a new and living way)을 통해서 가장 거룩한 ’성소‘에 들어오라고 열심히 죄인들을 초청하고 있을 때, 많 은 사람들이 눈 물과 큰 소리로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푹 쓰러져서 그 자리에서 몸에 힘이 빠진 상태로 누워 있었다. 어떤 사람 들은 몹시 떨고 진동을 했다. 어떤 이들은 너무나 비탄에 젖은 나머지 육체 의 모든 부분에 일종의 격동적인 동작을 보였으므로 4-5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했다. 나는 많은 히스테리 환자와 간질병 환자들의 발작 증세를 보아왔으나, 그러나 이들은 그러한 증세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즉시 믿음이 약한 자들이 마음에 상처받지 않도록 기도했다.
1741년 5월 10일 (월요일)
나는 죄인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다. 그 동안 별로 피곤을 몰랐다. 그러 나 그 후 이어진 애찬식 때, 나는 허리와 머리가 아플 뿐 아니라 몸에 열이 계속해서 있었다. 기도를 하려고 하니, 기침이 몹시 나서 말을 할 수가 없 었다. 바로 그 순간, 나 에게. “믿는 자들에게는 이적이 따르리라.”(막16:17) 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큰 소리로, 주여 나의 믿음을 도우소서 (increase my faith), 당신의 은총의 말씀을 입증하소서 하고 주님께 구했 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 나의 아픔은 사라졌고, 열도 떨어져서 기운 을 차리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오랫동안 아픔과 약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 주님,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1756년 4월 6일 (화요일)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주 어두운 밤이었다. 나는 나무 조각에 발이 부딪혀 아파서 넘어졌다. ‘아- 나는 지금부터 여러 주 동안 말씀을 듣지도 설교하지도 못 하겠구나’ 생각했다. 그 순간 나의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 있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라, 그리하면 너는 일어서리라.” 그래서 나는 뛰어 일어나며, 내 발을 뻗치면서 외쳤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내가 당 신의 이름을 부르오니, 나로 하여금 일어서게 하시옵소서.” 그 순간, 통증이 멈추고, 나는 일어섰다. 그 후 나의 발은 전처럼 아주 튼튼해졌다.
1757년 5월 5일
토마스 B 라는 사람이, 3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심한 파상을 입고 죽 을 뻔했다. 그러나 우리 교회(societies)에서 성도들이 기도하는 가 운데, 그는 순간적으로 고침을 받아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1740년 5월 21일 (수)
저녁에, ‘웃는 귀신’ 들린 여자가 나타나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다. 모든 사람의 주의가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외식을 부리는 사람이 아닌 것을 모두가 아는 바 이다. 그렇게 포악하게 악령에 사로잡혀 날뛰는 것을 일찍 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가끔 웃다가 또 거의 까무러친다. 그리고는 이내 큰 소리로 저주를 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 그러다가, 발을 구르 며 야단을 한다. 그때 그녀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사오 명의 사람이 달려 들어도 그녀를 억압하기가 힘들었다. 말할 수 없이 강했다. … 그러나 마침 내 그녀가 그리스도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하자, 그녀를 괴롭히던 난폭함은 사라졌다.
Ⅲ. 성령의 내적 사역과 외적 표적
1) 성령 역사에 대한 반론과 웨슬리의 관심
이런 사역이 일어남으로 인하여, 웨슬리의 복음 증거는 능력 있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열광주의자’라고 비난을 받았다. 왜냐하면, 당시의 영국 교회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나 성령의 기사 이적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유명한 정통주의 신학자요 브리스톨의 감독인 버틀러(Bishop Butler)는 웨슬리에게, “당신이 집회에서 사람들이 발작을 하고, 그러면 당신이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들었는데… . 성령의 기적적인(특수한, 일시적인) 계시나 은사들이 있는 것처럼 행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며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당신은 이 지역에서 설교하지 말고 떠나라”고 충고했다.
이런 반대자는 버틀러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리치필드의 감독은 출판물까지 발행하여 웨슬리의 주장은 열광주의자들의 교리이고 무용한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성령이 신자 안에서 내주하며, 내적 증거를 한다고 주장한다든가, 또는 성령에 의하여 기도하고 설교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성령의 기적적인(비정 상적인) 은사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인데, 이런 사역은 사도시대와 초대교회 에만 속한 것이다. 따라서 말세(오늘날)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행 하는 것은 헛된 일이며, 이는 열광주의자들의 교리이다.
타이어맨에 의하면 이런 반대는 깁슨 감독(Bishop Gibson), 와버튼 감독(Bishop Warburton)등 여러 지도자들로부터도 받았다. 일반 신자들의 반대도 적지 않았다. 이런 논란 속에서 웨슬리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 1739년 7월 7일의 일지에서, 그가 동료목사와 상의한 것을 볼 수 있다.
1739년 7월 7일 (토)
나는 휫필드 목사와 하나님의 내적인 역사와 동반되는 외적인 표적(쓰러 지는 일)에 관하여 의논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는 그가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주로 사실과는 다른 엄청난 거짓된 소문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그분 자신이 보다 더 잘 알게 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휫필드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는 모 든 죄인들을 연단 앞으로 초청했을 때, 그분 가까이에 있던 네 사람이 거의 동시에 쓰러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움직이지도 않고 의식도 없이 누워 있었고, 두 번째 사람은 몹시 덜덜 떨었고, 세 번째 사람은 소리 는 내지 않고 끙끙 앓으면서 온 몸에 강한 발작적인 움직임(진동)을 보였으 며, 네 번째 사람은 똑같은 발작적인 동작을 하면서 눈물과 큰 소리로 하나 님께 기도했다. 이때부터 우리는(웨슬리와 휫필드) 모두 하나님께서 역사하 시는 대로 수용하기로 하였다.
웨슬리는 교인들의 양육을 위하여 표준 설교집을 출판하였다. 그는 설교집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가 성서에서 발견한 하늘로 가는 길에 관하여 이 설교에 적절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 설교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구원의 길과 인 간이 꾸며낸 길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었다. 나는 참되고 성서적이면서 경험적인 신앙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 설명에 있어서 신앙의 참된 부분 은 조금도 삭제하지 않고, 또 거짓된 것을 덧붙이지도 않으려 했다. 이러한 노력 속에 내가 특별히 바라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첫째, 이제 방금 천국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곧 하나님의 역 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천국 가는 길에서 돌이키게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을 형식주의와 단순한 외적 종교에서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외적 종교는 마음의 종교를 세상 밖으로 축출시켜 왔다.
그리고 둘째, 마음의 종교, 곧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율법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여 악마의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웨슬리는 냉랭한 형식주의와 무분별한 열광주의를 경계하며, 성서적이고 경험적인 기독교를 긍정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심 속에서 웨슬리는 정통신학자들과 열광주의자들을 향한 충고와 경고를 하기에 이른다.
2) 정통신학자들에게 대한 충고
당시의 소위 정통신학자들에게 답하면서, 웨슬리는 지금도 복음이 권능으로 전파되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살고 있다면, 성령은 특별한 극적인 은사 곧 카리스마타(charismata)를 나타낸다고 믿었다.
또한 성령의 그러한 역사가 초대교회, 곧 성서시대에 성행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은 사도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그런 역사가 현재 나타나지 않는 것은 교회가 콘스탄틴 시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세속적인 로마인들이 교인이 되어, 신앙에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는 성령이 후퇴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이 식어져 있는, 즉 그저 죽은 신앙 형태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령께서는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런 기사와 이적들이 정지되고 있음은 교회가 평온과 안전 속에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안위와 명예로 믿고자 하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오는 비난과 공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성령의 감동(inspiration)과 증거(witness)는 필요한 것이며 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성령의 감동이라 함은, 성령께서 내적으로 도우시는 역사로서, 이를 통하여 사람의 이해와 의지를 깨우쳐주며, 사람의 연약함을 도우며, 신자를 위로하며, 정결케하며, 성결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회개하거나, 믿음으로 거듭나는 일이나, 성화와 성장,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
이런 성령의 증거는, 웨슬리에 의하면, 직접적이며, 사람이 인식할 수 있도록 체험하는 것이로되,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신자에게 역사하는 성령은 같은 성령이지만, 성령은 자신의 뜻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역사하신다. 어떤 때에는 강한 능력으로, 또 어떤 때는 조용히, 보이지 않게 역사하신다. 웨슬리는 말한다. “성령으로 하여금 자신의 방법대로 행하시게 하시오. 성령은 당신보다 더 현명하시며, 그분은 모든 일을 잘 행하실 것이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적으로 이루어진 사역의 내용이 하나님께러부터 온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후자가 본질적인 것이라면, 전자는 우연적인 것(acciderntal)으로 그 표적이 다양하다. 본질적인 것이 없는 현상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내용은 하나님께러부터 오는 것이라야 한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열광주의자들을 경계하기에 이른다.
3) 열광주의자들에 대한 경계
당시의 열광주의자들은 나타나는 현상과 표적에 치중하여, 은혜의 수단(교회 출석, 성례전<세례와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 또한 성서를 읽고 상고하는 일들)을 무시했다. 대로는 입신함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고 간주하며 정숙주의(Quietism)에 빠졌다. 더욱이, 웨슬리는 때로는 마귀의 역사로 흡사한 기적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이에 웨슬리는 “은혜의 수단”이라는 설교를 거듭하면서 그들의 그릇됨을 지적하면서 시정하려고 했다. 또한 “신자 안에 있는 죄”라는 설교를 하면서 그들의 그릇된 구원관을 시정하려고 애썼다. 웨슬리는 그의 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1741년 1월 11일 (주일)
나는 마귀의 권능도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경우를 경험했다. 방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던 존스 부인(브리스톨 집회소의 회원)이 성서를 읽 으려고 성서를 집더니, 갑자기 성서를 던져버리고는, 말하기를 “나는 충분히 착하단 말이에요. 난 더 이상 절대로 성서를 읽거나 기도하지 않을 거야.”라 고 했다. 내가 왔을 때에도, 그녀는 같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난 항상 죄로 가득 찬 사람으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죄를 짓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제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내가 선량한 기독교인이란 것 말이에요. 나는 내 일생에 남에게 해되는 일은 한 적이 없단 말이야. 지금보다 더 착 해지려고 바랄 것도 없단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같은 소리를 수없 이 말하면서, 오만과 거짓의 악령이 그녀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다음날 12일(월)에 나는 “치유받기 원합니까?”라고 물었다. 존스 부인은 “나는 온전한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그러나 구원받기 원합니까?”라 고 물었다. 그녀는 “나는 구원받았어요. 고민할 거리가 없단 말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존스 부인이 몸과 마음이 가장 격렬한 고뇌 속에 빠져 있 음을 식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몹시 땀을 흘리면서도, 몹시 냉담한 태 도로 조금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자, 존스 부인은 못 봐줄 정도로 노발대발하더니, 곧 죽은 사람처럼 푹 쓰러졌다. 몇 분이 지나자 그녀는 다시 소생하여 우리 와 함께 기도했다. 우리는 그녀를 당분간은 조용히 놓아두고 떠났다.
12일(월)에 존스 부인은 종일 격렬한 고뇌 가운데 사로잡혀 있었다…. 화 요일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려고 찾아왔다. 그녀는 찾아온 사람마다 그 들이 실제로 지은 죄나 마음으로 지은 죄를 다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들이 죄 지은 내용을 너무나 면밀히 잘 알아 맞히니까, 몇몇 방문객들은 올 때보 다 더 빨리 도망가 버렸다.
오후에 남편인 존스 씨가 킹스우드로 사람을 보내어 나를 불러오게 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웨슬리 목사님은 오늘밤에 오시지 못하시고 내일 아침에 오실 거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니, 하나님 스스로가 역사해 주 실 거에요. 내일 아침 6시 이전에 저는 치유받을 거에요”라고 했다.
존스 부인은 가만히 누워 있더니, 아침 6시 15분쯤 입을 열고 “당신(남 편)이 평안할지어다.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눅 10:5) “하나님의 평화가 나 의 영혼에 오셨도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욥 19:25) 나는 안다.”라 고 말했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의 입은 주님의 찬양으로 가득 찼고, 그녀 의 말은 주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에 관한 것뿐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웨슬리는 나타나는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한 바가 있다.
1743년 3월 12일 (토)
나는 두 번째 전도 여행을 끝마쳤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두 가지 문제를 특별히 조사했다. 첫째, 지난 주 거의 매일 밤마다 설교하는 동안 큰소리로 부르짖는 사람들의 경우에 관한 문제이고, 둘째, 우리를 떠나가 버린 사람 들의 숫자와, 떠나간 이유와 원인에 관한 문제이다.
전자의 경우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1) 그들 모두는 (내 생각에는 예외 없이) 완전히 건강한 사람들로서, 한 번도 발작을 해본 적이 없었으나, 마침내 이러한(넘어지는) 현상을 체험한 다는 사실.
(2)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든지, 혹은 들은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동안에, 이러한 현상은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사람들 각자에게 순간 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
(3) 사람들은 쓰러지는 순간에, 몸에 힘은 완전히 빠지고, 격렬한 고통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사실.
사람들은 (3)의 현상이 일어날 때 그 현상을 각자 다른 방법으로 표현했 다. 어떤 사람은 마치 칼로 그들의 내부를 찌르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마치 아주 무거운 짐이 그들 위로 내려 누르고 짜서 땅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심히 목이 졸려 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가슴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렸으며, 또 다른 사람은 마치 심장이, 모든 내부가, 몸 전체가 조각 조각 으로 찢겨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3)의 징후를 나는 어떤 자연적인 원인으로 돌릴 수도 없고, 또한 하나님의 영(성령)의 영향으로 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스도 에게로 올 때에, 사탄이 그들을 찢어버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 탄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탄식으로 발하게 함으로써, 공포에 싸인 사람들 을 놀라게 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하려고 획책하는 것 같다.
(4) 사람들은 육체뿐 아니라 마음도 여러 모양으로 영향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왜 이러한 영향을 받게 되는지 그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이 러한 것 도한 교활한 악령의 짓이라고 본다. 이 악령은 가능한 한 많은 사 람들을 의도적으로 어리둥절하게 하고 혼동하게 함으로써 악령의 계획을 폭 로하지 못하도록 한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분명하고도 특별한 설명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souls)을 찔러서, 그들의 외적인 죄와 마찬가지로 내적인 죄가 무엇인가를 확신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치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느낌으로써, 하나 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비난자인 사탄이 큰 권능 을 가지고 이와 같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말하며 또한 영원히 파멸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때에 사람들을 순간적으로 사로잡게 되는 여러 가지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억지로 크고 비참한 소리를 지 르도록 한다.
우리는 위의 (1)-(4)항목까지 본 대로, 웨슬리는 넘어지는 현상이 성령의 역사로 되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로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려는 사탄의 역사로 되어지는 경우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타나는 현상에 대하여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759년 11월 25일 (주일)
오후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와 함께하셨다. 그런데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려는 것보다는 위로함을 주시기 위한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 심이 나타나는 방법이 전에 내가 이곳을 다녀갔을 때와는 현저하게 다름을 보았다. 이제는 입신하는 사람도, 울부짖는 사람도, 넘어지는 사람도, 진동 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몇 사람만이 몹시 떨었으며, 나지막하게 말하는 소리만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풍부한 화평”(시 37:11)으로 생기가 넘치게 외었다.
위험한 것은 울부짖음, 진동, 환상, 입신 등과 같은 현상이 우리의 내적인 역사(변화)에 필수적인 것이라 하여, 이러한 현상 없이는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여, 특수한 현상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다. 또다른 위험은 아마도 이 러한 특별한 현상을 너무 과소평가하든지, 전적으로 정죄하든지, 또한 하나 님의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의 역사에 방해가 된다고 상상하 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진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급작스럽고 강하게 역사하셔서 그들이 죽 어야 마땅한 죄인들임을 확신시켜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에 대한 자연 스러운 결과는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울부짖거나, 강하게 육체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다.
(2) 믿는 자들을 강건하게 하시고 용기를 북돋아주시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다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꿈으로, 입신과 환상으로 은총을 내리시는 것이다.
(3) 위에 나타난 일에 있어서도 어떤 경우에는,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자 연적으로 일어난 것인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일어난 것인지를 혼동하곤 한 다.
(4) 사탄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기 위하여 이러한 현상을 모방하여 흉내를 내는데, 사탄의 의도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the whole work)를 불 신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사탄이 흉내를 낸다고 해서 하나님 역사의 전부를 포기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며, 또한 동시에 하나님 역사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처음에 이러한 역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 임을 확실히 믿었다. 오늘날에는 부분적으로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역사가 어느 정도 순수한가 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이며, 그리고 그 역사가 불순한 점이 섞였는 지, 또한 타락한 것인지 식별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가장하는 사람이 있다 는 것을 가정해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실제로 그렇지도 않은 일을 보고 느 낀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한 하나님의 영(성령)의 권능에 진정 으로 압도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나 진동하는 동작을 흉내 내는 사람도 있 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진정한 역사 를 경시하거나, 혹은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림자가 본지를 멸시할 수 없는 것은, 위조품이 진짜 다이아몬드를 멸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사탄이 우리가 보게 된 환상을 역이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만의 죄를 짓게 하는 호재(好材)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리는 오로지 자만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겸손한 사랑 외에는 하나님에게 아 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스스로 작은 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 다. 그렇다고 해도, 환상을 일반적으로 경시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비합리적 이요 비기독교적이다.
위에서 본 웨슬리의 글에서, 그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비한 은혜를 과장하거나, 영적인 무지로 인간의 감성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영적 흥분과 환상에 빠지는 신신비주의(Neo-mysticism)를 경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리는 나타나는 영적 현상과 표적이 하나님께로 오는 것인지, 마귀에서 오는 것인지를 분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설교 “성령의 증거(Ⅰ)”와 “성령의 증거(Ⅱ)”, 그리고 “우리 영의 증거”라는 설교에서 이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 설교들에서 그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증거 없이는 신자생활에 활력소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모든 신자가 누릴 특권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바로 이런 점에 있어서 웨슬리는 정통적인 신학자, 냉랭한 형식주의자들의 무감각함을 비판하였다.
웨슬리가 말하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란, 우리 영혼에 나타나는 하나의 내적 인상(inward impression)으로써, 신자는 이를 통하여 성령이 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위에서 지적했듯이, 이 직접적인 증거가 하나님께로서 나온 것인지를 분별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내적 증거에 동반하는 외적 표적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것이며 마귀도 때로는 기이한 일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객관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곧 성령의 간접적인 증거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웨슬리는 분명히 열광주의자들과 구분되며, 동시에 신자들이 무분별한 열광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간접적인 증거로 웨슬리는 성서의 말씀을 들고 있다.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성서에서 이탈한다면, 아니 성서 본문의 의미를 그 문맥에 나타난 대로의 분명한 문자적 의미에서 이탈시킨다면, 여러분은 어느 때나 열광주의에 빠질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성서는 우리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권고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는 기독론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성령에 의하여 행동하셨다면, 성령의 역사와 증거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에 부합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739년 6월 22일(금)
오후에 나는 피시폰즈(Fishponds)에서 설교를 했으나, 내 안에 생명도 활 기도 없었기에,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제쳐두고 추수 때 다른 일꾼들을 보 내시지 않나 하는 의심이 부쩍 들었다. 나는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집회 에 참석하여 연약한 상태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 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 4:1)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청중들에게 모양으로나, 소문으로나, 자신들의 느낌으로나 다른 사 람의 말을 듣고 성령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그들이 본 꿈이나, 환 상이나, 계시로도 성령을 판단치 말며, 또한 그들의 몸에 나타나는 어떤 현 상이나 비탄의 모양으로도 판단치 말라고 했다. 이러한 것들은 그 자체가 애매하고 논란의 대상이 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되어진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단순하게 믿을 수도 없으며 비난받을 수도 없으나 다만 “율법의 증거와 말씀”(사 8:20)에 따라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참 영의 역사와 증거는 회개와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나는 일에 따라야 한다. 또한 성서가 말하는 대로 성령의 증거에는 겸손과 기쁨, 평강,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 증거에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선한 양심과 성령의 열매가 있어야 한 다.
따라서 성령의 증거를 타당한 확신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와 간접적인 증거가 공히 있어야 한다고 웨슬리는 강조한다.
Ⅳ. 요약과 결론―관용의 정신
웨슬리는 성령의 역사를 중요시하고 강조했다. 그는 올더스케이트에서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확신 있는 신자가 되었으며, 그의 사역에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가 이끈 18세기 영국 교회에서의 부흥운동, 아니 전 세기에 걸친 복음적 부흥운동은 분명한 성령의 역사였다.
웨슬리는 성령의 강한 역사를 체험했다. 이런 성령의 내적 역사는 기사 이적과 같은 기이한 현상도 동반했다. 그러므로 한편 웨슬리는 오해와 비판도 받았다. 특히 성령의 기사 이적은 사도시대로 종료되었고, 현재는 없다고 생각하는 당시의 정통주의 신학자들과 영국 교회 신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며, 열광주의자로 오해받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웨슬리는 성서가 인정하는 성령의 기사 이적은 현재도 있다는 것을 교부들의 글과 자신의 경험을 들면서 변호했다. 웨슬리는 초대교회가 보여주었듯이, 복음이 능력으로 전파되며 진실한 믿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지금도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들, 곧 카리스마타(charismata)는 나타난다고 믿었다. 웨슬리는 오늘날 이런 표적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교회의 신앙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성령의 역사가 멈춘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사랑이 차디차게 식었고, 신앙이 죽은 상태로 남아 있는 신자들 안에서는 그런 역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참 믿음이 있는 곳에는 지금도 그런 은사로 역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오늘의 신학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충고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웨슬리가 체험했고, 역사에서 입증되었듯이,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 없이는 신앙의 확신과 박력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와 철학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철학에는 힘이 없다. 종교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은 확신에서 오는 것이다.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 없이는 하나님과의 산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지적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에서 나타난다.
이와 같은 각성은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 운동에서 메아리치고 있음을 본다. 로잔 운동은 함께 모여 세계선교의 대과제를 인식하고, 성서의 빛 아래서 신학적 입장을 정립하며, 오늘의 시대에 적응성 있는 선교방법을 모색하고, 온 교회가 협력하여 세계복음화에 헌신하자고 다짐하는 데서 시작된 운동이다. 이 대회는 여러 교회가 함께 협력하는 기초로서 유명한 로잔 언약을 발표했다. 그리고 1989년에 마닐라에서 제2차 대회를 가졌다. 이 대회에는 170국가에서 약 3,000명의 지도자가 참석했다. 그리고 로잔 언약을 보완하는 마닐라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The Whole Gospel)의 선포에는 기사 이적이 동반됨을 인지했다.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하며, 이는 사탄에게서의 해방, 곧 하나님 능력의 나타냄을 부분적으로나마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을 인격적으로 체험한 진실한 신자는 모두가 긍정하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핀 대로, 웨슬리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은혜의 수단(The means of Grace)을 부정하는 열광주의자와 정숙주의자들을 경계하며, 신자는 성령의 정상적인 은사 곧 사랑의 은사를 힘써 구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웨슬리는 냉랭한 신앙을 갖고 있는 형식주의자들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지나친 열광주의자들을 경계하였다. 성령의 역사는 기적과 같은 외적인 현상을 동반하지 않을 때도 있을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또한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은 내적 역사이며, 외적 현상은 우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은혜의 경험도 강조했지만, 그의 신학의 최고 권위는 성서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말하기를, “나의 근거는 성서이다. 그렇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성서를 따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령의 체험, 곧 성령의 내적 증거도 모두 성서에 의하여 시험하여야 한다. “성서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계시가 참 하나님의 계시인지 아니면 그저 사람이 짐작한 계시인지를 가려내는 시금석인 것이다. 사람들이 율법에 호소하든 체험에 호소하든 모든 영(spirit)을 성서에 의하여 시험해보아야 한다.”
이 문제와 연관하여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는 웨슬리가 각자 다르게 체험을 하는 신자들에 대하는 관용의 태도이다. 웨슬리는 기독교의 교리에서 본질적인 것(essential)과 비본질적인 것(non-essential)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는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것을 고수했으나, 비본질적인 것, 곧 의견(opinion)에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동의’하고 관용의 정신을 발휘했다. 웨슬리가 은총론에서 그렇게 대립되었던 조지 휫필드의 서거에 즈음하여 행한 설교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각 곳에서 외친 그 위대한 성서적 교리들을 고수한다. 그러나 교리 들 가운데에는 보다 덜 본질적인 교리들도 있다. 이 본질적이 아닌 교리들 에 있어서는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들도 여러 세대 동안 의견이 분열되어 왔 다. 이런 일에 있어서는 그렇게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합의하도록 생각해 도 좋다. 아니 그렇게 생각을 하라. 그러나 한편 우리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중요한 교리들을 굳건히 붙들자.”
이런 관용적인 정신은 성령체험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과 태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 당시의 영국 교회 지도자들은 성령체험이나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 또는 신유나 기사 이적에 대하여 말하면, 도매금으로 열광주의자 또는 마술사라고 몰아서 비난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웨슬리는, 열광주의(Enthusiasm)의 성격이 어떤 것이며, 진실한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기사 이적과 신유의 역사들을 열광주의에서 오는 것으로 혼동하지 말라고 설명한다.
웨슬리는 1749년, “열광주의의 성격” (The Nature of Enthusiasm)이라는 설교를 출판하였다. 이어서 1755년, 1778년, 1789년에는 이를 소책자로 재출판했다. 또 그는 『편협한 생각을 조심하라(A Caution Against Bigotry), 『관용의 정신』(Catholic Spirit)이라는 설교를 출판했다.
여기에서 웨슬리는 우리가 배격해야 할 열광주의자는, 일반적으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나 영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상상이나 환상에 의존하여 광열(religious madness)에 빠지거나,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것인 양 말하는 그릇된 자들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은 진실하지만, 실수를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사람의 상상이나 꿈을 따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상상이나 환상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가져다 맞추는 과오를 번번이 범한다. 그러면서 또한 교회에 주어진 은혜의 수단들을 사용하지 않는 과오를 범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에서도 기적적인 능력과 표적이 따르는 것을 부정하지 말라고 했다. 따라서 이런 역사가, (1) 성서의 증거와 어긋나는가, (2) 그런 역사의 열매가 어떤 것인가, (3) 이런 역사를 들은 사람들의 나타내는 열매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면서 평하여야 한다고 했다. 웨슬리는 이런 헤아림 없이 무턱대고 기사 이적을 따르거나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를 열광주의로 보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는 바로 웨슬리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한 변호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이성주의와 유물론적 사고에 빠진 신학자들은, 자기 이성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모두 신비주의적이요, 열광주의라고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초월적인 하나님의 성령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들 속에 이성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신비적인 요소”가 있음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웨슬리가 말하는 대로 헤아림 없이 “기적적인 것”은 무조건 신비주의나 열광주의자들의 소행이고 마술을 쓰는 라고 하는 평가는 경솔한 일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그의 설교에서, 참 열광주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알지 못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지 말고, 일반적으로 들은 소문을 가지고 사람을 열광주의자라고 판단하지 말며, 남을 판단하는 은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또 하나의 열광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늘 말과 행동을 항상 조심과 두려움으로 하여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웨슬리는 비성서적인 열광주의에 빠져 자만의 죄를 짓는 것에 대해 경계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웨슬리는 양자간의 논쟁에서 신자들의 고집과 편협함을 경계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제자가 주님을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고 하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고 하신 말씀을 풀이하면서, 하나님의 일하는 사람이 나의 교회에 속하지 않았거나 내 의견과 다르다고 내 편이 아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방해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며, 일방적인 비방을 삼가라고 했다. 성도는 더욱 기도하고, 경성하여 일하면서, 피차간에 더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웨슬리의 ‘관용의 정신’을 반영하는 태도이다. 그는 중요한 교리에서는 양보가 없지만, 여러 의견에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동의하고’, 주님의 일에 협력하는 정신을 주장했다.
이 글을 마치면서, 웨슬리가 성령의 기적적인 역사에 대한 논증의 마지막에 기록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나는 성서가 약속한 것들을 기쁨으로 받아 행한다. 기독교에서 행해온 것을 와서 보라. 이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나는 이런 옛 그리스도 인들을 (그들의 실족함이 있었다 해도) 더 존경한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별로 순수한 기독교에 대한 것을 보거나, 쓴 글을 읽거나,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소위 현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런 일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지하면서도, 이에 대한 깊은 선입관을 갖고, 그는 열광주의라고 하면서 반대한다. 무엇 때문인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이나 나 자신을 초대 교부들과 같은 그리스도인들로 만드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