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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웨슬리의 집회현장에 나타난 영적인 현상들: 1 - 최승태박사

본문

Jone Wesley

웨슬리의 집회현장에 나타난 영적인 현상들:
- 웨슬리의 일기를 중심으로 -




최  승  태 박사
(클레어먼트, 감신대)


목차

I. 서 문

II. 웨슬리의 집회현장에 나타난 영적 현상들
  1. 웨슬리 자신의 성령 체험 및 치유체험
  2. 바닥에 쓰러짐
  3. 육체적, 영적 고통에서 치유 받음
  4. 반대하던 사람들이 변화됨
  5. 불신자들이 구원받음
  6. 신도회
  7. 귀신들린 사람들이 구원받음
  8. 웃음현상
  9. 영적현상에 대한 웨슬리의 견해

III. 나가는 말






Jone Wesley

웨슬리의 집회현장에 나타난
영적인 현상들

I. 서 문


존 웨슬리는 능력 있는 복음 전도자로서 일생을 살았다. 그는 말을 타고 36만 km를 여행하면서 4만 번의 설교를 했다. 그의 영감 있는 설교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변화시키고 회심케 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웨슬리가 처음부터 능력 있는 복음전도자는 아니었다.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성클럽(Holy Club)을 만들어 거룩한 삶과 복음전파에 힘을 쏟을 정도로 열정적인 신앙을 지니고 있었지만, 여전히 영적인 갈증에 목말라 했다. 특히 1735년 미국 조지아까지 가서 2년 동안 인디안 선교를 위해 애썼음에도, 실패한 채 돌아온 뒤에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 더욱 낙담해 했다. 낙담한 웨슬리에게 영적인 각성을 일으켜 준 사건은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잇 집회에서 일어났다. 올더스게잇 집회에 참석하여, 누군가 낭독하는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듣던 중, 그는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체험을 했다. 웨슬리는 이 체험을 통해 영적으로 거듭났다. 
올더스게잇 체험을 통해 영적인 각성을 갖게 되었지만, 웨슬리는 아직 복음전도자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있었다. 웨슬리가 복음전도자로 나서기에는 그 체험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전히 자신감을 갖지 못하던 웨슬리로 하여금 복음전도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준 사건이 1739년 1월 1일 페터레인에서 일어났다. 이때 그는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해졌다. 

페터레인 체험을 계기로, 웨슬리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유명한 구호를 외치며 복음전도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1738년의 사건이 그를 영적으로 깨어나게 했다면, 1739년의 사건은 그를 능력 있는 복음전도자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만일 웨슬리가 올더스게잇 체험에만 머물렀다면, 그는 능력 있는 복음전도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고, 감리교회도 창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1739년 페터레인 체험이후, 웨슬리가 설교할 때마다, 수많은 영적인 현상들이 일어났다. 웨슬리의 집회에서, 죽은 자처럼 쓰러지거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거나, 몸을 떨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웃거나, 큰 소리를 지르는 일들이 일어났다. 또한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 가고, 기쁨으로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사도행전이 보도하는 사도들의 사역이 웨슬리를 통해 재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웨슬리는 이런 놀라운 영적 현상들을 자신의 일기에 기록해 놓았다. 그의 일기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는 고린도전서 4장 20절의 말씀을 증명해준다. 우리는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II. 웨슬리의 집회현장에 나타난 영적 현상들

웨슬리의 일기에 나타난 영적 현상들을 몇 개의 항목으로 묶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살펴보려 한다. 이를 통해, 웨슬리의 집회현장에서 나타난 다양한 영적현상들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웨슬리의 집회가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영적현상들로 인해 얼마나 풍성한 열매를 맺었는지도 알 수 있다. 


1. 웨슬리 자신의 성령 체험 및 치유체험

이미 언급했듯이,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잇 집회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고, 1739년 1월 1일 페터레인 집회에서는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는 체험을 했다. 올더스게잇 체험은 이미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웨슬리의 페터레인 체험만을 다룰 것이다. 그는 이 체험을 자신의 일기에 자세히 적어 놓았다. 또한 웨슬리는 복음전도의 과정에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 받았으며, 영적인 체험도 했다. 

1) 페터레인의 체험 [1739년 1월 1일 (월)]

나는 오늘 페터레인(Fatter Lane)에서 홀(Westley Hall), 킨친(Charles Kinchin), 잉햄(Ingham), 윗필드(Whitefield), 허칭스(Hutchings), 동생 찰스(Charles), 그리고 약 60명의 다른 형제들과 함께 애찬을 나누었다. 새벽 3시 무렵, 우리가 예정에 없던 기도를 드리는 중,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우리에게 임했다. 많은 이들이 극도의 기쁨으로 소리를 질렀고, 또한 많은 이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분의 엄위하심의 임재에서 돌아온 즉시, 우리는 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 하나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주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2) 치유체험 및 영적체험

➊ 1741년 5월 8일(금) 
너무 아팠다. 하지만 나는 오늘 저녁 그럭저럭 설교를 끝냈다. 그러나 토요일(9일)에는 나의 육체적 힘이 거의 빠져서 몇 시간 동안 머리를 들 수도 없었다. 주일(10일)에는 거의 종일토록 누워 있어야 했고, 그 자세로만 있는 것이 쉬웠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죄인들을 회개하도록 초청하는 동안에는 나의 약함이 일시 정지되었다. 하지만 이어진 애찬식에서는 등과 머리의 고통, 그리고 계속되는 열에 더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처럼, 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침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나의 마음속에는 강렬하게 이 말씀이 들어왔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나는 예수님께 ‘믿음을 더해 주시고,’ ‘은혜의 말씀을 확신시켜 달라고’ 간구했다. 말씀을 전하고 있는 동안 고통이 사라졌다. 열도 떠났다. 나의 육체적 힘이 회복되었다. 몇 주 동안 나는 약함도 고통도 겪지 않았다. ‘오, 주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➋ 1746년 11월 12일(수)     
저녁에 채플에 있을 때, 이가 너무 아팠다. 집으로 오는 길에 스피어(Spear)씨가 자신이 몇 년 동안 갖고 있었던 탈장에 대해 말해주었다. 의사가 그것을 불치의 병이라고 선언한 후, 그것이 순식간에 고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나의 고통은 멈추었고,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➌ 1773년 9월 19일(주일)
나는 회중에게 설교를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30분 동안 설교했다. 그런데 정확히 20년 전 캔터베리(Canterbury)에서 그랬던 것처럼, 처음엔 왼쪽 어깨에 통증을 느꼈고, 번갈아 오른쪽과 왼쪽에 통증을 느꼈다. 아침이 되었을 때는 손을 머리까지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기가 흐른 후, 훨씬 좋아져서 저녁에는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통증이 경감되어 설교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다음 날 저녁에는 목소리가 약해져 있긴 했지만 편지들을 읽었다. 이때부터 나의 목소리와 체력이 서서히 회복되었고, 주일에는 고통 없이 설교했다.

➍ 1747년 10월 16일(금)
나는 두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소위 ‘전기 실험’을 보러 갔다. 자기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믿으려는 불쌍한 지성인들에게 이것은 얼마나 당황스러운 것인지! 불이 물속에서 타오르며 공기에서보다 더 자유롭게 물속을 통과하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알코올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실제 불꽃이 나의 손가락에서 나오는가? 어떻게 이런 이상한 현상들이 유리구에서 일어나는가? 이것은 모두 신비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인간의 교만을 덮으려는 수단으로 사용하시는 것 같다.

2. 바닥에 쓰러짐
 
웨슬리의 집회에서 일어난 여러 영적 현상들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청중들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쓰러지기 직전에 격렬한 고통에 휩싸이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쓰러진 다음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또한 그냥 맥없이 죽은 사람처럼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쓰러진 뒤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기쁨으로 충만해 졌다. 웨슬리는 쓰러지는 현상을 인격적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유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고통 속에서 쓰러짐 [1739년 4월 21일(토)]

위버 홀(Weaver's Hall)에서, 한 젊은 남자가 갑자기 격렬하게 떨기 시작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마음의 고통이 더욱 심해져서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셨고, 성령 안에서 기쁨과 평화로 충만하게 하셨다.

2) 죽은 듯이 힘없이 쓰러짐
 
➊ 1739년 5월 12일(토)
저녁 집회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대속 물로’ 자신을 주셨다고 선포하는 중에, 세 사람이 자기들의 모든 죄를 열거하면서, 거의 동시에 죽은 것처럼 쓰러졌다. 그러나 그들은 곧 일어났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자기들의 죄를 씻어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➋ 1739년 9월 18일(화)
아이슬링턴(Islington)에 있을 때, 한 여인이 좀처럼 보지 못했던 고통을 안고 우리를 찾아왔다. 그녀의 슬픔과 공포는 너무 커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몇 마디 한 뒤, 그녀는 마음과 육체의 힘을 모두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한숨과 신음소리만이 그녀가 아직 살아있음을 나타내었다. 우리는 그녀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했다. 힘들고 무거운 짐에 대해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달라고 간구했고, 그분은 우리의 간구를 내치지 않으셨다. 그녀는, 말하자면, 자기의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눈으로 보았다. 그녀는 그분을 믿음으로 붙잡았고, 그의 영혼은 소생하였다.
 
3) 시간의 간격을 두고 쓰러짐

➊ 1739년 4월 26일(목)
뉴게이트(Newgate)에서,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어떤 준비도 없이 갑자기 예민하게 이끌림을 받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신다’는 말씀을 강하고 분명하게 증거 했다. 또한 나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도록 인도되어졌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라면, 소경이 길을 벗어나도 하나님께서는 전혀 마음 쓰시지 않을 것이지만, 만일 하나님의 진리라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확증시켜 주십시오.’
그 즉시 한 사람이 바닥에 쓰러졌고, 바로 이어서 또 한사람이 쓰러졌으며, 그리고 또 한사람이 쓰러졌다. 그들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뒹굴었다. 그들 중 한 여인이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그녀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녀의 무거운 마음을 기쁨으로 바꿔주셨다. 우리는 같은 고통 속에 있던 두 번째 여인을 위해서도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녀의 영혼 속에 평화를 주셨다.
 
➋ 1739년 6월 22일(금)
오후에 피쉬폰즈(Fishponds)에서 설교했다. 설교하는 동안, 내 앞에 있던 한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고, 곧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이 그렇게 되었다. 다른 다섯 사람은 30분 동안 쓰러져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격렬한 고통 속에 있었다. ‘지옥의 그것과 같은 고통이 그들을 엄습했고, 죽음의 덫이 그들을 덮쳤다.’ 그들의 고통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평화로 응답해 주셨다. 한 사람은 한 시간 동안 심한 고통 속에 있었고, 한 두 명은 훨씬 더 큰 고통 속에서 3일을 보냈다. 하지만 나머지는 그 당시에 큰 위로를 얻었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면서 돌아갔다.


3. 육체적, 영적 고통에서 치유 받음

웨슬리의 집회에서는 육체적 고통으로 신음하던 사람들이 치유 받고, 영적인 고통에서 해방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정신이상 증세에서 벗어난 사람도 있었다. 영적인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극심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때는 몸을 떨거나, 탄식하거나, 우는 현상도 일어났다. 하지만 웨슬리와 그의 동역 자들이 함께 기도할 때, 고통은 물러갔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기쁨과 평화가 찾아왔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웨슬리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이 일반적인 고통과 달리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멀쩡하던 사람이 웨슬리의 설교를 듣는 중에 갑자기 울면서, 혹은 몸을 떨면서 고통을 호소하게 되지만, 얼마 후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을 얻었다. 
특히 웨슬리의 집회에서 은혜를 체험한 한 여인은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죽음에까지 내 몰리는 상황에서도, 성령의 능력 안에서 죽음조차도 초월하는 신앙을 갖고 있었다. 웨슬리는 그의 일기에서 그 여인을 소개함으로써,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질병의 치유여부를 넘어서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1) 영적인 고통에서 치유 받음     

➊ 1739년 1월 21일 (주일)
마이너리스(Minories)에서 설교하던 저녁에, 우리는 매우 놀라운 일을 체험했다. 갑자기 잘 차려입은 중년의 한 여성이 죽음의 고통 속에 있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한 동안 그렇게 했다. 그것은 극심한 영혼의 고통이었다. 그녀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때, 다음 날 나에게 오라고 요청했다. 다음 날, 그녀는 3년 전에 강력한 죄 의식에 사로잡혀서, 아무데서도 위로를 얻지 못한 채, 밤낮으로 고통을 당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녀는 자기가 속한 교구의 목회자를 청하여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했다. 그 목사님은 그녀의 남편에게 그녀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으니 즉시 의사에게 보일 것을 권하였다. 한 의사가 초빙되었고, 그는 그녀의 피를 뽑고 물집이 생기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그녀의 영적인 병이 낫질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고통에 시달렸다. 그런데 어제 밤에 그녀는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통을 담당하셨고, 따라서 그분의 뜻에 반하여 죄를 지은 자신의 영혼을 치유하시리라는 희미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➋ 1739년 4월 17일(화)
나는 볼드윈가(Baldwin Street)로 가서 사도행전 4장을 강해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말씀에 대한 확신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 즉시 옆에 서 있던 한나 코니쉬 (Hanna Cornish)가 큰 소리로 격렬하게 외쳤다. 그녀는 마치 죽음의 고통 속에 있는 듯했다. 우리는 계속 기도했고, 결국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새 노래를 불렀다.
곧 이어 다른 두 명(엘리자베스 홀더, Elizabeth Holder, 와 제인 워록 Jane Worlock: 이들은 모든 사람들을 선한 양심으로 대하는, 그 지역의 유지들이었다)이 심한 고통에 사로잡힌 채, 불안한 마음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들도 주님이신 하나님께 찬양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간구한 사람은 존 엘리스(John Ellis)였다. 그는 브리스톨에 처음 온 사람이었는데, 마치 지옥의 뱃속에 있는 듯이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 자신의 타락을 치유해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해졌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치유의 손길을 베풀고 계시며, 지금도 당신의 거룩한 아들 예수님을 통해 표적들과 기적들을 일으키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많은 증인들이 있다.

➌ 1739년 4월 18일(수)
저녁에 루크레티아 스미스(Lucretia Smith, 전날에 세례 받은 퀘이커교도)와 레베카 모건(Rebecca Morgan), 그리고 몇 명과 만났다. 그런데 레베카 모건은 말하거나 보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다. ‘죽음의 슬픔이 그녀를 감쌌고, 지옥의 고통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우리는 간절히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그녀의 고통을 하나님께 드러냈다. 하나님은 곧 자신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임을 나타내셨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로워 짐으로써’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으로 기뻐했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녀의 가슴속에 퍼졌다.

➍ 1739년 6월 25일(월)
아침 10시경, 제인 코너(Jane Connor)는 앉아서 일하는 도중 갑자기 심하게 떨면서 고통스러운 마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오후 내내 그 상태로 보냈다. 그런데 저녁 모임에서 하나님이 그녀의 무거움을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셨다. 5-6명의 사람들 역시 오늘 마음의 고통을 당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수개월 동안 누구도 위로할 수 없었던 고통을 없애 주신 그녀처럼, 그들에게도 ‘온전하게 만드시는 손길’을 펴셨다.

➎ 1742년 6월 11일(금)
나는 아픈 사람들과 나에게 오기를 원하지만 올 수 없는 사람들을 방문했다. 6시에는 핵시(Haxey)(엡워스에서 2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 근처의 어퍼소프(Upperthorpe)에서 설교했다. 설교의 주제는 위로의 말씀 이었다: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8시에는 마른 뼈의 부활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에 대해 설교했다. 그들 가운데 정말로 흔들림이 있었다. 탄식과 한탄의 소리가 크게 들렸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인도하셨으므로, 그들은 한 마음으로 사방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큰 울음을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자기의 영을 보내주신 하나님께서 확실히 그들의 외침을 들으실 것이고, 그들을 도와주실 것이다. 

 1743년 11월 17일(목)
스펜(Spen)에서 ‘우리의 지혜이고, 의이며, 거룩함이요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을 전했다. 내가 브리스톨에서 처음으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이래로 청중들이 이렇게 크게 감동받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울고, 탄식하면서 극심하게 몸을 떨었다. 이 범주에 들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 큰 비탄의 소리로 부르짖었다. 얼마 후, 나는 몇 번에 걸쳐서 12-14명과 대화를 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좋은 말씀과 장차올 세상의 능력을 맛보게’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 정신이상증세에서 치유 받음

➊ 1739년 10월 12일(금)
우리는 최근에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은 많은 사람들 위에 떨어졌던 어두움을 관찰할 신선한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로부터 자신의 얼굴을 오랫동안 숨기지 않으셨다. 수요일에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소생했다. 목요일 저녁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시기에 직접적인 도움’이라고 믿었던 하나님을 발견했다. 나는 오늘 아침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보다 분명하게 현존하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늘 많은 증인들이 하나님은 ‘놋쇠로 된 문을 부수고, 철의 장벽을 산산이 부수 신다’고 선언했다.
나는 말로 형언 못할 고통을 당하며 ‘짜증나는 상처를 가진 사람’ 뿐 아니라 정말로 ‘정신 이상자들’로 취급받는 한두 사람에 대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문제들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있을 때,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받은 응답은 이것이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평화. 즉 사람들을 향한 온정.’
곧 나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갔다. 그녀가 악마에 의해 이상할 정도로 찢겨 있어서, 혹시 그녀의 친지들이 ‘종교가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녀의 발아래에서 사탄을 찌그려 트려 달라고 간구했다. 즉시 우리가 간구했던 것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열정적으로 외쳤다. ‘그는 갔다. 그는 갔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의 영으로 충만해졌고, 건전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 이래로 나는 그녀가 여러 번 주님 안에서 강해진 것을 보았다. 갑자기 내가 질문했다. ‘지금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는 ‘하늘나라’라고 대답했다. 내가 물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하나님.’ 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당신을 자극할 때, 당신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녀는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어떤 것에도 자극받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림자처럼 저를 지나갈 뿐입니다.’ ‘당신은 주님의 목적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매우 동정심 많고 부드러운 자비의 소유자가 아닌가?

➋ 1739년 10월 13일(토)
나는 영혼의 깊은 고통을 겪으면서 전날 성직자의 조언을 구했던 한 사람과 만났다. 그 성직자는 그녀의 머리가 정상이 아니므로 가서 의사를 만나보라고 말했다. 저녁에 우리는 ‘마음에 고통을 당하는’사람들을 치유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 속에 가쳐 있던 다섯 사람은 자신들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 육체적 질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

➊ 1741년 5월 14일(목)
그녀(Nancy Morris)의 열이 높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찾아가서 어떠냐고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아프지만, 괜찮아요. 오, 저는 행복해요. 행복해요. 행복해요. 왜냐하면 나의 영이 나의 주님이신 하나님 안에서 계속 기뻐하기 때문이지요. 모든 하늘의 천사들이 나의 주님 안에서 기뻐해요. 그리고 저는 그들과 함께 기뻐요. 저는 주님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덧붙였다. ‘구원 얻은 한 후사에 대해 천사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가! 그들이 나를 얼마나 기뻐하는지! 오 나의 주님. 저는 당신 안에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➋ 1741년 5월 15일(금)
나는 다시 그녀를 찾았다. 내가 갔을 때, 그녀가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분이 내 것입니다. 그분은 저를 모든 죄에서 씻어주셨어요. 오. 하늘나라는 땅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가! 바로 그렇게 그분은 저의 죄를 나로부터 멀리 옮기셨어요. 오.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입었을 때” 그분은 얼마나 기뻐하셨겠는가! 그분은 들으심을 입으셨고, 나와 전 인류를 위한 구원의 가능성을 획득하셨어요. 다 이루어졌어요. 그의 은혜는 모두에게 무상으로 주어져요. 저는 증인입니다. 저는 죄인들 가운데 으뜸이고, 타락한 죄인이며, 빛과 사랑을 배신한 죄인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씻음을 받았어요. 저는 깨끗해졌어요.’
내가 물었다. ‘당신은 지금 죽을 것을 예상하십니까?’ 그녀가 말했다. ‘제가 죽을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에게 삶과 죽음은 하나예요. 저는 저의 교단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저는 더욱 기뻐할 것입니다. 당신과 나, 그리고 그분이 당신께 맡겼던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
저녁에 나는 다시 그녀를 방문했다. 그녀는 더욱 약해졌고, 목소리도 변해 있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믿습니까? 당신의 영혼이 시험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녀가 웃으면서 그리고 위를 보면서 대답했다. ‘저기 어린양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계신 곳에, 무슨 시험이 있단 말입니까? 저에게는 어두움도 없고, 구름도 없습니다. 적이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조금도 해치 못합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병이 방해되지 않습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어떤 것도 저를 방해하지 못합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의 영입니다. 그리고 어떤 것도 그 영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저의 몸은 정말로 약하고, 고통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영혼은 항상 기쁘고 찬양합니다.’




4. 반대하던 사람들이 변화됨

웨슬리가 사역하던 당시의 영국은 영국 국교회(성공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여기에 독립교회로서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회와 회중교회가 있었다. 또한 침례교, 모라비아, 퀘이커. 그리고 가톨릭교회가 있었다. 이 가운데 침례교는 웨슬리처럼 복음전도에 열심이었지만, 다른 교회들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웨슬리를 반대했다. 특히 영국 국교회는 웨슬리의 복음전도를 반대했을 뿐 아니라, 방해까지 했다.
영국 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당시 철학적이고 고상한 설교를 주로 하였고, 고고한 분위기를 좋아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웨슬리가 옥외집회를 하는 것도 못마땅했지만, 그의 집회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들에 찬성할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웨슬리의 집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영적 현상들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결코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는 영국 국교회 교인들 뿐 아니라, 가톨릭 교인들과 장로교인들, 그리고 불신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웨슬리의 집회 시에 일어나는 영적 현상들을 사기나 기만이라고 공격했다. 그 때마다 웨슬리는 그들을 집회현장에 참여시켰고,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영적 현상들이 술수가 아님을 깨닫게 해 주셨다. 반대하는 이들 가운데는 악령에 사로잡힌 자들도 있었는데, 웨슬리가 기도했을 때, 이들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악령의 사슬에서 놓여났다. 
특히 웨슬리와 함께 사역했던 조지 윗필드(George Whitfield)도 처음에는 웨슬리 집회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윗필드는 웨슬리와 논쟁도 했다. 하지만 윗필드가 설교할 때도 똑 같은 영적 현상이 일어남으로써, 그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웨슬리와 함께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되었다.   

1) 악령에 사로잡혀서 반대하던 사람들이 변화됨 

➊ 1739년 3월 2일(금)
그분의 가장 놀라운 역사 가운데 하나가 그 다음 주 화요일에 일어났다. 그 날 나는 ‘이 새로운 방식’에 지나칠 정도로 격분하여 격렬하게 반대했던 한 여인을 방문했다. 그녀와의 논쟁이 그녀의 화를 더욱 돋울 뿐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발견한 나는 논쟁을 그치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했다. 그녀는 기도하는 것에 동의하여 무릎을 꿇었다. 불과 수 분후에 그녀는 극심한 고통에 빠졌다. 그녀의 몸과 영혼이 모두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는 곧 바로 매우 진지하게 외쳤다. ‘이제 나는 알아요.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받았어요.’ 그녀는 이런 취지의 말을 많이 했고, 그것들은 죽지 않을 것이란 소망을 증거 했다. 그 시간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단호한 자세로 전에 자신이 핍박했던 신앙을 선포하게 하셨다.

➋ 1739년 3월 8일(목)
그녀와 그녀의 이웃들이 함께하는 저녁 모임에 갔다. 거기에서 나는 한 신사를 발견했다. 그는 그녀를 한 때 사로잡고 있었던 똑 같은 영에 잡혀서, 복음의 진리를 반대하는 데 열심이었다. 나는 곧 바로 그와 칭의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그런 논쟁을 하는 것이 그나마 덜 악한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논쟁이 무르익을 무렵, 약간 떨어져서 앉아있던 한 여인이 말씀의 찔림을 받았다. 그녀는 우리가 또 다른 집으로 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크게 소리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자마자, 그분은 그녀를 도와주셨다.

2) 반대하던 의사가 변화됨 [1739년 4월 30일(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사람들이 부르짖는 소리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의사였는데, 그는 그런 현상이 사기이거나 기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그가 몇 년간 알고 지내던 한 여인이 (내가 뉴게이트에서 설교하던 중) ‘심하게 소리 지르며 눈물을 흘린’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그 의사는 자신의 눈과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모든 증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그 때 굵은 땀방울이 그녀의 얼굴에 흘러내렸고, 그녀의 모든 뼈들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기만이 아니고, 잘못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확신하고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그녀의 영혼과 몸이 순식간에 치유되었을 때, 그 의사는 그것이 하나님의 손길임을 깨달았다.

3) 반대하던 퀘이커 교도가 변화됨 [1739년 5월 1일(화)] 

전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찔림을 받았다. 이것은 볼드윈 가에서 ‘구원의 능력을 갖고 계신 그분’께 큰 소리로 간구하면서 내는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외침으로 인해 나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나는 신실한 마음의 소유자들 모두가 나와 함께 ‘우리를 위해 들림 받으신 왕자’, ‘포로 된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분’께 간구하기를 요청했다. 곧 그분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셨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셨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가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빛을 보았고, (나중에 확인 바) 10명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
옆에 있었던 한 퀘이커교도는 이런 사람들의 위선을 정말로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벼락 맞은 것처럼 쓰러졌을 때,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입술을 당 다물고 있었다. 그가 처한 고통은 아주 끔찍해 보였다. 우리는 그의 어리석음을 그에게 돌리지 말아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러자 곧 그는 머리를 들고 크게 외쳤다. ‘이제 저는 압니다. 당신이 주님의 선지자라는 것을.’

4) 신앙을 상실하여 웨슬리를 반대하던 사람이 회복됨

➊ 1739년 5월 2일(수)
뉴게이트에서 또 한 명의 회개 자가 위로를 받았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신다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는 자’라고 나를 악평한 편지를 보기 위해 이웃집으로 갔다. 그 편지를 썼던 사람이 거기 있었다. (전에 ‘나는 나의 구원자가 살아계심을 압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하지만 지금은 나를 악평하는) 젊은 여인이 들어올 때, 모두는 눈물을 흘리며, 영혼의 깊은 고뇌 속에 잠겼다. 그녀는 자신이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혼란이 점점 더 가중되었고, 마침내 성령이 그녀를 떠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외쳤다: ‘그분이 오십니다! 그분이 오십니다! 나는 다시 나의 주님이신 하나님 안에서 기쁩니다.’ 우리가 막 감사하면서 일어섰을 때, 또 다른 한 여인이 4-5걸음을 휘청거리며 걷다가 쓰러졌다. 우리는 그녀와 함께 기도했다. 그러자 그녀는 죄에 대해 강하게 깨닫게 되었고, 진심으로 구원을 위해 탄식했다.

➋ 1739년 5월 2일 (수)
내가 언급하지 않은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존 해이돈(John Haidon)이고, 직업은 직공이었다. 그는 전날 저녁 볼드윈가의 집회에 참석했다. (내가 알기로) 그는 정상적인 생활을 했고, 계속해서 공적인 기도회와 성례전에 참여했다. 그는 교회에 대한 열심을 지니고 있었고, 비국교도들에 대해 반대했다. 그는 ‘집회에서 사람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직접 보고 평가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는 새벽 한시까지 한 사람 한 사람씩 자신의 지인에게 찾아갔고, 무리하게 그들에게 그것이 ‘악마의 망상’임을 확신시키려 했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집에 가는 길에, 우리는 거리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존 해이든이 미쳤다고 말했다. 전말은 이랬다. 그가 저녁 식탁에 앉았을 때, 자신이 모방했던 설교, “믿음으로 얻는 구원”(Salvation by Faith)이 처음부터 끝까지 떠올랐다. 마지막 구절을 생각할 때, 그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의자에서 떨어졌고, 괴로운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자신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이웃들이 놀래서 그의 집에 모여들었다. 나는 한시와 두시 사이에, 그곳에 도착하여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그를 발견했다. 방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그의 부인이 그들을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하지만 그가 외쳤다. ‘안 돼. 그들 모두를 들어오게 하시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보게 하시오.’ 두 세 사람이 온 힘을 다해 그를 붙잡고 있었다. 그는 즉시 나를 응시하였고, 손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외쳤다. ‘이 사람이 내가 사람들을 속이는 자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사로잡으셨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망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포효했다. ‘오, 너 악마여! 너 저주받은 악마여! 악마 군단이여! 너는 머물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너를 쫓아내실 것이다. 나는 그분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안다. 네가 뜻한다면, 나를 찢어라. 하지만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을 다시 바닥에 부딪쳤다. 동시에 그의 가슴은 죽음의 고통을 겪듯이 헐떡거렸고, 굵은 땀방울이 그의 얼굴에 흘러내렸다. 우리 모두는 기도에 전념했다. 그의 고통은 멈추었고, 그의 몸과 영혼 모두 자유를 얻었다.
거기에서 나는 밥티스트 밀스(Baptist Mills)로 가서,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의 용서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왕자와 구원자로 높이신 그분’을 선포했다. 그리고 존 해이든을 다시 보았을 때, 그는 목소리를 잃어버렸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몸이 약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5) 영적 현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웨슬리의 설명

➌ 1739년 5월 20일 (주일)
이 시기에, 나는 거의 계속적으로 질문을 받고 있었다. 그 질문은 이런 이상한 사역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브리스톨에 온 사람들로부터, 혹은 나의 옛 지인이나 새로 사귄 지인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하지요?’ 그리고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경고를 받았다(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사태에 대한 오보들 때문에 일어났다.) 그것은 비전이나 꿈을 중요시 하지 말라는 것, 혹은 부르짖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또는 외적인 고백만으로 죄를 용서받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주제에 대해 여러 차례 나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에 대한 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우리 사이에 놓인 문제는 전적으로 그렇진 않지만, 주로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지금 이런 일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 적어도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그런 일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저는 이들을 모두 긍정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귀로 이런 일들을 들었고, 또한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한 순간에 두려움, 공포, 절망의 영으로부터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영으로, 또한 그 때까지 그들을 지배하던 죄의 욕망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순수한 열망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➍ 1739년 5월 20일 (주일)
저는 이것들에 관해 거의 매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습니다. 환상이나 꿈에 대해 제가 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자신들 안에 이 위대한 변화가 일어난 사람들 몇 명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변화는 십자가에 달리신 혹은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꿈속이나 환상 속에서 만나는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에 대한 판단은 그들이 기뻐하는 것으로 하십시오. 당시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그들의 눈물이나 경련을 일으키는 쓰러짐이나, 외침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열매가 아닙니다. 당신이 짐작하듯이, 저의 판단기준은 이것들이 아니라), 그들의 삶 전체의 변화입니다. 지금까지 사악하던 자들이 그 때로부터 거룩하고 정의롭고 선한 사람들로 바뀝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당신에게 보여드릴 것입니다. 그 때까지 사자였지만 지금은 양이 된 사람, 술 주정뱅이였지만 지금은 모범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 호색가였지만 지금은 육체가 더러워지는 것을 혐오하는 사람. 이들은 모두 저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살아있는 증인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전처럼 지금도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성령의 은사를 주십니다. 제가 아는 한, 이런 일들은 갑자기 일어나며, 종종 꿈이나 하나님에 대한 환상 속에서 일어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증인으로 발견될 것입니다. 저는 그분의 은혜로 이런 일들을 또한 증거 할 것입니다.

➎ 1739년 5월 20일 (주일)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 않으면 어떤 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에 은혜를 베푸셔서, 그분이 우리의 내적인 변화를 일으키시는 바로 그 때, 우리들이 계속해서 보고 듣도록 수많은 외적인 표적들을 허락하신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표적과 이적’을 본다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은 믿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겠지만, 그것들을 잘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들은 순수하게 자연적인 결과이다. 그들은 방안의 열기와 숨 막힘 때문에 정신을 잃은 것뿐이다.’ 또 다른 이들은 이렇게 확신 한다: ‘이것은 모두 속임수이다. 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조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이런 일들이 오직 사적인 방안에서만 발생하는가? 왜 밝은 대낮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가?’

6)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

➊ 1739년 5월 21일(월)
오늘, 우리 주님께서 응답하셨다. 내가 ‘잠잠히 내가 하나님임을 알라’는 말씀을 역설하고 있을 때, 그분은 자신의 팔을 펴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밀폐된 방도 아니고, 사적인 방도 아니고, 공개된 장소에서, 그것도 2000명 이상의 증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일어났다. 그분의 능력의 임재 앞에서, 한 사람, 또 한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심하게 떨면서 땅에 쓰러졌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부르짖으며 비탄의 울음을 터뜨렸다.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그때까지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7명이 기쁨으로 노래하면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➋ 1739년 5월 21일(월)
그날 저녁, 니콜라스 가(Nicholas Street)에서 설교를 시작하자마자, ‘마음에 찔림을 받고’ 용서와 평화를 갈구하는 한 사람의 외침으로 인해 방해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멸망 받지 않고,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는 중요한 진리에 대한 증거로, 그분이 이미 이루신 일을 계속 선포하였다. 또 한 사람이 쓰러졌다.
그런데 그는 나와 반대의 교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이 광경에 매우 놀라고 있는 사이, 가까이에 있던 작은 소년이 쓰러졌다. 뒤에 서서 그를 응시했던 한 청년은 쓰러져서 죽은 자처럼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곧 울부짖으면서 땅에 자신을 부딪쳤고, 얼마나 무거운지 6명이 달려들어도 그를 제대로 제지하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토마스 맥스필드(Thomas Maxfield)였다. 나는 존 해이든 외에, 그처럼 악마에게 찢겨서 상처 난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만민의 구주’께 오셔서 자신들을 도와주실 것을 간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온 집이 (그리고 거리 전체가) 소리로 가득 찼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기도했고, 10시가 되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안식을 찾았다.
저녁식사 후에 나는 어떤 여인에게 초대되었다. 그녀는 전에 결코 알지 못했던 확신을 갖게 되면서, 서둘러 모임을 빠져나왔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여전히 그녀를 따르고 있었고, 그녀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그녀는 극심한 고통 속에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자, 그녀의 영혼이 안식을 찾았다. 약 12시경, 나는 끈질긴 부탁을 받고 한 사람을 더 방문했다. 내가 갔을 때, 그녀는 단지 한 번 고통을 겪었고, 곧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내 생각에 오늘 무거운 짐을 벗고 기쁨을 찾은 사람은 29명이었다.

➌ 1740년 8월 11일(월)
구원을 갈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 오십 명이 방에서 기도하고 감사하면서 하룻밤을 보내기를 원했다. 10시가 되기 전에 나는 그들을 떠나서 다른 방에서 누웠다. 하지만 나는 그 집의 다른 곳들에도 잠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새벽 두 세 시 경 잠이 깨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곧 마치 칼에 찔린 듯 수많은 사람들의 혼란한 소리를 들었다. 내가 방안으로 들어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그 소리는 더욱 커졌다.
나는 특별히 고통으로 크게 소리 지르고 있는 한 사람을 주목했다. 그는 J. 와일드(Wild)였다. 그는 그때까지 항상 ‘위선자들만이 소리 지른다’고 확신했던 사람이었다. 슬림스(Slims)부인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지금은 큰 소리 비탄의 울음을 터뜨리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곳에서 그들의 소리를 들으셨다. 그분이 말씀하셨고, 우리는 모두 위로를 얻었다. 그분은 사탄을 우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셨고, 슬픔과 한숨은 물러갔다.

➍ 1740년 9월 18일(목) 
공중의 권세자는 자신의 불안정한 왕국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시도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파운더리(Foundery)의 한 가운데로 들어와서 크고 과장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도행전 11장을 읽는 내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곧 바로 말씀의 해머가 바위들을 산산 조각 내었다. 모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조용히 경청했다.

7) 반대하던 조지 윗필드가 변화됨 [ 1739년 7월 7일(토) ]

나는 하나님의 내적인 사역에 매우 자주 동반되는 외적인 표징들에 대해 윗필드(George Whitefield)와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나는 그의 반대가 사실에 대한 총체적인 오보에 근거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다음 날 그는 보다 나은 정보를 입수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즉 그가 (자신의 설교를 적용하여) 모든 죄인들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갖도록 초청하자마자, 그와 가까운 곳에 있던 네 사람이 거의 같은 시간에 쓰러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의식이나 동작도 없이 누워 있었다. 두 번째 사람은 극심하게 떨고 있었다. 세 번째 사람은 몸 전체에 강한 경련이 일어났지만 신음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없었다. 네 번째 사람은 세 번째 사람처럼 몸에 강한 경련이 일어났고, 울면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간구했다. 내가 믿기에, 이때부터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자신이 기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역을 하시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5. 불신자들이 구원받음

웨슬리는 설교의 상당한 부분을 불신자들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은 웨슬리가 불신자의 구원에 얼마나 큰 열정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그의 구호는 그의 열정을 단적으로 잘 나타낸다.
웨슬리의 집회에서는 불신자들의 구원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들은 울거나, 몸을 떨거나, 탄식 하거나, 크게 소리 지르거나, 가슴을 쳤다. 이처럼 현상은 다양하지만, 항상 기쁨과 평화 속에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1) 절망으로 가슴을 치면서 구원받음

➊ 1739년 4월 29일(주일)
약 4,000명에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는 말씀에 근거하여 무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했다. 그 시간에 절망에 빠져서 자비를 구하며, 오랫동안 죄 속에 있던 한 사람이 충만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용서하는 사랑과 더 이상 죄짓지 않게 하는 능력을 받았다.   

➋ 1739년 5월 16일(수)
내가 밥티스트 밀스에서 ‘그분은 우리의 죄로 인해 상함을 입으셨다’는 설교를 하는 중에, 한 중년의 남자가 거칠게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를 낫게 하신 그분’께 부르짖기 시작했다.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 새로운 찬송을 주셨다.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고,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별히 밥티스트 밀스에 살며, 이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필요로 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불안에 휩싸인 채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난 뒤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모두 씻어주셨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2) 눈물을 흘리며 구원받음

➊ 1739년 10월 17일(수)
추위가 전보다 더 매서웠다. 하지만 내가 믿음을 통해서, 아니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오는 구원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이 구원에로 가는 믿음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500-600명의 사람들이 그대로 듣고 있었다. 정오 무렵에는 우스크(Usk)로 갔다. 거기에서 나는 작은 무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인자가 오셨다’는 말씀을 전했다. 백발이 성성한 한 남자가 울면서 심하게 떨었다. 그리고 드포덴(Ddefauden)에 있던 두 세 사람과 거기에 있던 또 한 사람도 그렇게 했다. ‘그들은 매우 괴로워했다.’ 즉 그들은 울면서 위로받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들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

➋ 1739년 10월 17일(수)
오후에는 폰티풀(Pontypool)로 왔는데, 편리한 장소를 구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거리에 서서 500~600명의 청중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구원을 얻으려면 주 예수를 믿으시오.’ 저녁에는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는 사람들 모두를 구원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란 사실을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몇 명은 ‘인내로 결실’할 것이다.     

➌ 1742년 6월 12일(토)
율법의 의와 신앙의 의에 대해 설교했다. 설교하는 중에 몇 명이 죽은 듯이 쓰러졌다.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신앙의 의를 위해 신음하는 죄인들의 외침이 있었고, 그 소리에 내 목소리가 압도당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기쁨으로 머리를 들었고, 감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영혼의 바람, 즉 죄의 용서를 받은 것이다.
나는 거기에서 한 신사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결코 종교적이라고 가장하지 않는 점이 눈에 띠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30년 이상 공중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상처럼 가만히 서있는 그를 보고, 내가 갑자기 물었다. ‘선생님, 당신은 죄인입니까?’ 그는 깊고도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그를 따라온 그의 아내와 하인 한 둘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를 집으로 데려 갔다.


➍ 1742년 8월 8일(주일)
래드클리프 스퀘어(Radcliff Square)에서 크게 외쳤다: ‘너희는 왜 죽으려 하는가, 오, 이스라엘의 집이여.’ 한 불쌍한 남자가 유일하게 과도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만지셨다. 그는 머리를 숙였다. 눈물이 얼굴에 번졌고,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3) 마음에 찔림을 받고 구원받음

➊ 1741년 4월 7일(화)
나는 22년 이상을 무신론자라고 말해왔던 사람과 식사를 했다. 하지만 최근 몇 개월 사이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다가 그 말씀에 마음이 베임을 당했다. 그러고 나서는 밤이고 낮이고 쉴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자신이 부인하던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에 평화를 주시고 나서야 평안을 얻었다.

➋ 1740년 4월 11일(금)
란타남(Llantarnam)교회에서, ‘여러분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라는 말씀을 전했다. 오후에는 폰티풀(Pontypool) 근처에 있는 포니르헐(Ponyrheol)에서 설교했다. 몇 사람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특히 올굿 부인(Mrs. Allgood)이 그랬다. 마음에 찔림을 받은 또 한 사람은 에반스(Mr. Evans)였다. 그는 성직자로서, 자신의 개인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이런 영적인 현상들을 싫어했었다. 얼마 후, 나는 ‘오, 너희 매 마른 뼈들이여, 주의 말씀을 들어라.’라고 외쳤다. 그때 정말로 거기에 흔들림이 있었다. 서 너 명이 내게 왔다. 그들은 내가 전에 거의 들어 본적이 없는 슬픈 탄식을 했다. 또한 11시와 12시 사이에 한 가엾은 술주정뱅이가 그렇게 했다. 그는 화요일에 전한 말씀으로 확신을 갖고 있었다.

➌ 1741년 8월 12일(수)
나는 한 사람을 방문했다. 그는 자기 아내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에 의해 불로 정화 받는 중에 있었다. 그가 자기 아내를 때리려고 하는 그때(그는 자기 아내를 자주 때렸다), 하나님께서 그를 강타하셨다. 순간 그에게는 신생아 정도의 힘 밖에 남지 않아서 때리려고 올린 팔을 떨어뜨리고, 땅 바닥에 쓰러졌다. 그 이후로 그는 침대에 누워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 안에서 기뻐하고 있다.

➍ 1742년 4월 18일(주일)
오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았음에도, 다시 어리석음에 빠진 한 사람이 깊이 확신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죄와 회한과 공포로 찢김을 당한 것이다. 그녀는 설교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똑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그 고통은 몸과 영혼 모두에 미치는 것 같았다. 곧 이어 많은 사람들이 그 집의 다른 곳에서 만났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너무 날카로워서 나는 기도할 수도 없었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오싹함을 느꼈다. 나는 그녀를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아니면 집 밖으로 내 보내는 것이 최선인지를 물어보았다. 대부분 그녀를 안으로 들어오게 하자는 의견을 보였다. 우리는 그녀를 안으로 들이고는 그녀의 퇴보를 치유해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우리는 곧 우리의 간구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녀를 ‘평화 속에서 보냈을 뿐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로 채워주셨다. 그때까지 마음의 짐을 벗기고, 믿음 안에서의 평화와 기쁨으로 대신 채워주신 것이다.

➎1742년 12월 19일(주일)
스스로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오후에는 ‘목마른 자들은 모두 물로 나아오라’고 외쳤다. 그 시각에 비통하게 그리스도를 부르짖던 한 사람(메리 에머슨, Mary Emerson)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4) 정신이상자로 취급받던 사람이 구원받음 [1742년 6월 17일(목)]
 
5시경, ‘신앙의 의’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도 못해서, 중간에 설교를 중단해야 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의 느낌으로 충만해졌고, 우리의 입에서는 기도와 감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다소 만족해졌을 때, 나는 계속해서 죄인들을 준비된 구원에로 초청했다.
내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불신자들을 의롭게 하시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중에, 저녁에 보았던 똑 같은 축복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다. 청중 가운데는 이전에 자신의 불신앙에 대해 깊이 확신해서, 밤낮으로 ‘주님 구원해 주소서. 혹은 나는 멸망합니다.’라고 외쳤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이웃들은 모두 그녀가 미쳤다는데 동의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한 의사의 손에 맡겼다. 그 의사는 그녀에게서 다량의 피를 뺐고, 구토를 시켰으며, 몇 개의 물집을 내었다. 이 모든 것들이 효과를 내지 못하자. 한 동안 그녀의 병은 고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이웃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한 한 사람에게 그녀에 대해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존슨(Johnson)부인은 오자마자 그녀의 병의 본질을 꿰뚫어보았다. 존슨부인 역시 똑같은 증세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약들을 치우게 하고, 환자로 하여금 ‘예수님을 보도록’ 조언했다. 그 결과 오늘 저녁 그녀는 신앙으로 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녀의 부서진 마음을 치유해 주셨다.

5) 죄수들이 구원받음 [1742년 9월 4일(토)]
 
나는 몸과 마음에 괴로움을 당하는 불쌍한 살인자를 만나러 뉴게이트로 가도록 요청받았다. 나는 반대했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간수 뿐 아니라 모든 교도관들은 너무 좋은 기독교인들이어서 감리회라는 이름을 싫어했고, 그래서 아침에 죽을 사람이 진지하게 간청해도 내가 들어가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갔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문이 내게 열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병에 걸린 그 범죄자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기 위해 은혜를 내려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조언했다. 오래지 않아 중죄인들이 모였고, 나는 그들에게 죄인들의 친구이신 예수님에 대해 강력하게 설교했다. 그들은 마치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인 것처럼 놀라움을 표하면서 그 말씀을 받아들였다. 내가 공동의 홀(그들은 이렇게 불렀다)로 내려왔을 때, 나에게 질문했던 죄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내가 말씀을 전하고 있는 중에 점점 더 많은 죄수들이 모이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누구도 멸망받기를 원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원하셨다.

6) 웨슬리를 방해하던 폭도와 술주정뱅이가 구원받음

➊ 1760년 9월 21일(주일) 
나는 8시에 리두루스(Redruth)의 번화가에서 설교했고, 성 큐버트(St. Cubert)의 쿠퍼(Cooper)씨는 아침과 오후에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내가 말했던 것을 강하게 확신시켜주었다. 조용하고 평온한 그날 낮 한시에 지금까지에서 가장 많은 회중이 모였다. 하지만 내가 궤납(Gwenap)에서 설교하는 내내 비가 내렸다. 우리는 그날을 애찬으로 마감했다. 그 애찬에서 성 아이브스(St. Ives)의 광산노동자인 제임스 로버츠(James Roberts)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돌보셨는지에 대해 말했다.
그는 성 아이브스 모임의 첫 멤버 가운데 하나였는데, 곧 자신의 옛날 죄 속으로 되돌아가서, 2년 동안 그 속에 빠져 지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설교-하우스(preaching-house)를 부수는 폭도를 이끌었다. 얼마 후 그는 자신의 동료와 함께 에드워드 메이(Edward May)의 가게에 서있었는데, 마침 그 설교가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동료가 말했다. ‘내가 감리교도라고 그에게 말 할 거야.’ 에드워드가 말했다. ‘안 돼.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네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꼴이 되는 거야.’        제임스는 이 말이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지금 나의 말도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게 될 거야.’ 그는 그것이 내내 자신을 뒤따르는 악마의 소리라고 상상하면서, 몸을 돌려 집으로 급히 갔다. 40시간 동안 그는 눈을 감지 않았고, 고기나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창문가로 갔다. 그 때 그는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너의 불의에도 자비를 베풀 것이다. 나는 너의 잘못과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모든 짐은 떠나갔다. 그는 지금까지 수년째 복음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다.

➋ 1763년 6월 16일(목)
나는 16일 저녁 5시에 듀스베리(Dewsbury)에서 설교했고, 금요일 17일에 맨체스터(Manchester)에 갔다. 나는 여기에서 놀랄만한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콘글레톤(Congleton)에 한 유명한 술주정뱅이가 있는데, 그는 설교가 있을 때마다 설교하는 집에 기대고 서서 설교자를 저주하고 욕함으로써 기분을 풀곤 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설교를 듣는’상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너무 불편하게 만들었고, 밤새도록 잠을 못 잤다. 아침이 되어서는 더욱 불편해졌다. 뜰을 거닐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그는 항상 감리교도들을 비방하는데 열을 올리는 술친구들 가운데 하나를 찾아갈 생각을 했다. 그는 친구, 사무엘(Samuel)에게 자신의 상태를 말하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사무엘이 말했다. ‘그렇게 불편하다면, 가서 그 모임에 합류하자. 나는 그렇게 할 거야. 왜냐하면 나는 내 생애에 그처럼 불편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다.
그들은 지체 없이 그렇게 했다. 하지만 곧 데이빗이 외쳤다. ‘합류한 것이 유감이다. 왜냐하면 나는 곧 다시 술을 마실 것이고, 그들은 나를 쫓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4일 동안 확고하게 견뎠다. 5일 째 되는 날 그는 ‘한잔 하자’는 동료들에 의해 설득 당해서 한잔 두잔 마시고 말았다. 결국 그들 가운데 한 동료가 말했다. ‘여기 봐라. 술 취한 감리교도가 있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의자와 거기 있는 것들로 그 동료를 쳤다. 그러고는 나머지 동료들을 밖으로 내 몰았고, 주인여자를 붙잡아 밖으로 끌고 가서 그녀를 개집으로 던져 넣고는 다시 술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술집 문을 부숴서 거리로 던졌다. 그러고 나서 들로 뛰어가서 자기의 머리칼을 쥐어뜯더니 데굴데굴 구르다가 땅에 쓰러졌다.
하루 이틀 지나 애찬을 나눌 때, 그는 아무도 보지 못하게 남 몰래 들어와서 뒤에 조용히 있었다. 푸르즈(Furz)씨가 기도하는 동안, 그의 몸과 마음은 공포에 사로잡혀서 고통스러워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했다. 잠시 후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두 손을 쭉 펴고는 소리쳤다: ‘내 모든 죄는 용서 받았다!’ 동시에 그 방의 다른 쪽에 있던 사람이 소리쳤다: ‘예수는 내 것이다! 그 분은 나의 죄를 씻어주셨다.’ 이 사람은 사무엘이었다. 데이빗은 사람들을 밀어젖히고 가서 자신의 팔로 그를 붙잡고 말했다: ‘와서 처녀 마리아의 노래(Virgin Mary's song)를 노래하자. 전에는 그 노래를 결코 부를 수 없었어. “내 영혼은 주님을 찬미하고, 내 영은 나의 구원자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다.”’ 그 후 그들의 행동은 자기들의 고백의 진정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6. 신도회

웨슬리는 각 지역마다 신도회(Society)를 결성했다. 신도회는 감리교회가 정식으로 출범하기 이전의 공동체였다. 웨슬리는 신도회를 통해서 많은 활동을 했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신도회는 구제사업, 교육사업, 고아를 위한 사업, 과부와 노인을 위한 봉사, 그리고 의료봉사활동까지 다양한 사회사업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총력을 기우렸다.
하지만 신도회의 핵심은 사회사업이 아니라, 영적인 각성운동, 즉 복음전파였다. 신도회를 통해 이루어진 각종 사회사업도 사실은 복음전파의 일환이었다. 이런 면에서, 신도회는 웨슬리의 복음주의 운동의 거점이었고, 중심이었다.
특히 웨슬리는 신도회가 처음 가졌던 복음에 대한 열정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우려하며, 잘못된 원인이 분열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분열이야 말로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최대의 적이라고 주장했다. 웨슬리에 따르면, 신도회가 분열된 이유는 일에 매달려서 그리스도를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앙이 그 이유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웨슬리가 일 자체보다 그리스도와의 관계, 즉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없이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런 일들은 무의미할 뿐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의미 있다고 역설하는 웨슬리에게서 우리는 참된 목회자의 전형을 본다.   
     
1) 신도회에서 일어난 영적 현상들

➊ 1739년 6월 15일 (금)
저녁에 웨핑(Wapping)의 신도회에 갔다. 내 몸은 지쳐있었고, 영혼도 약해있었다. 로마서 3:19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했으나,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찬양하는 내내, 히브리서의 어떤 말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말씀이 몇 장 몇 절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께 생각나게 해달라고 간구했고, 성경책을 펴자 히브리서 10장 19절이 들어왔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 . .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내가 진지하게 이 ‘새로운 살 길’을 통해 ‘성소에 들어오도록’ 죄인들을 초청하고 있는 동안, 말씀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힘이 다 빠진 상태로 쓰러졌고, 어떤 사람들은 극심하게 떨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들의 몸짓이 너무 격렬하여 4-5명의 사람들이 한 명을 붙잡기도 힘들었다. 무수히 많은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과 간질병환자들을 보아왔지만, 나는 이들 가운데 누구도 그와 비슷한 증상을 찾을 수 없었다.

➋ 1739년 6월 15일 (금)
나는 즉시 약한 사람들이 이런 광경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지만 한 여인이 심하게 상처를 받았다. 그녀는 그들이 하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무도 그녀를 다르게 생각하도록 설득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녀는 3-4야드쯤 가다가 쓰러졌고, 그들과 똑 같이 격렬한 고통의 몸짓을 했다. 그렇게 감동을 받은 사람들(그들 대부분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중에 순간적으로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가운데 29명이 다음날 나를 찾아오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18명만 찾아왔다. 나는 그들과 가까이에서 대화하면서, 그들 가운데 몇 명이 나를 만나지 않고 집으로 먼저 간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머지도 속히 집에 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2) 신도회의 문제점

➊ 1739년 6월 16(토)
우리는 페터레인의 신도회 모임을 가졌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고 그분이 우리에게서 당신의 영을 거두어 가신 것이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그것은 다방면에 걸친 우리의 불신앙 탓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슬프게 해드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분열 탓 이었다: ‘하나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 속해있다. 또 다른 하나는 나는 아폴로 편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자신의 사역들에 매달려서 그리스도 대신에 그 사역들을 신뢰한 탓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했던 거룩함의 작은 시작에 우리가 안주한 탓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그분의 역사를 모독하고, 그것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생각하거나, 상상력의 산물로 돌리고, 동물의 영으로 생각하고, 심지어 그것을 악마의 망상으로 돌린 탓이었다. 그 모임에서 우리는 처음에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을 찾았다. 몇 사람은 바닥에 납작 엎드러졌고, 몇 사람은 갑자기 한 뜻으로 큰 소리로 찬양하며 감사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간증했다. 1월 1일 이래로 이런 날은 없었다.

➋ 1740년 7월 2일(수)
신도회에 갔다. 거기에서 나는 그들의 마음이 멀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4일 금요일에 나는 그들 가운데 여전히 옛 길에 있는 몇 사람을 만났다. 하나님께서는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들을 압박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길에 서 있는지를 아신다. 9일 수요일에 나는 한 번 더 와서 그들 모두에게 설명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15일 화요일에 우리는 대규모 회의를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들은 각자의 의견만을 고집했다.     

➌ 1740년 7월 18일(금) (신도회)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나의 어머니와 함께 감사의 성찬에 참여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불쌍한 페터레인의 형제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했다. 우리 모두는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알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7. 귀신들린 사람들이 구원받음

복음전도운동의 과정에서 웨슬리는 때로 귀신들린 사람들을 만났다. 그의 일기에는 귀신들린 자와의 대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웨슬리가 말을 걸었을 때, 귀신들린 자가 대답을 했는데, 이것은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를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의 말이었다. 웨슬리는 이런 대화를 통해 그를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이 드러나게 했고, 기도함으로써 그것들을 쫓아내었다. 악한 영들이 떠난 사람들은 모두 기쁨을 얻고 하나님께 찬양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웨슬리가 보이지 않는 귀신의 존재를 관념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웨슬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상들, 즉 육체적 혹은 정신적 질병들 가운데 악한 영들에 의한 것들이 있음을 알았고, 그것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치유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것은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귀신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지만, 귀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역시 성서적인 자세는 아니다. 웨슬리는 철저히 성서에 근거한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1) 귀신에게 사로잡혀 괴로움 당하던 사람이 구원받음

➊ 1739년 10월 23일(화)
브래드포드(Bradford)를 향해 말 타고 가면서 신생(new birth)에 관해 쓴 로(Mr. Law)의 책을 읽었다. - 철학적, 사변적, 추리적인 것들은 모두 공허하고 무가치하다!
오, 거기에는 타락만이 존재할 뿐!

11시에 나는 베어필드(Bearfield)에서 약 3000명에게 본성의 영(the spirit of nature), 노예의 영(the spirit of bondage), 그리고 양자의 영(the spirit of adoption)에 대해 설교했다.
저녁에 돌아오는 도중 나는 킹스우드(Kingswood)에 사는 한 젊은 여인을 방문해야겠다는 강한 감동이 왔다. 그래서 거기에 갔다. 그녀는 19에서 20살쯤 되었는데도 읽거나 쓰지도 못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두 세 사람이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것은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 공포, 그리고 절망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몸 전체에 나타나 있는 수 천 개의 상처들은 지옥의 개들이 얼마나 그녀의 가슴을 물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여러 가지가 혼합된 비명은 참기가 어려웠다.
그녀의 돌 같은 눈에는 눈물이 고이지 않았다. 말씀이 제대로 그녀에게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나는 저주 받았다. 저주 받았다. 영원히 버림받았다. 6일 전이었다면, 당신이 나를 도와줄 수 있었을 것이요. 하지만 지나갔어요. 나는 악마의 것이다. 나는 자신을 그에게 바쳤다. 나는 그의 것이다. 나는 그를 섬겨야 한다. 나는 그와 함께 지옥에 가야한다. 나는 그의 것일 것이다. 나는 그를 섬길 것이다. 나는 그와 함께 지옥에 갈 것이다. 나는 구원받을 수 없다. 나는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저주받아야 하고, 저주 받을 것이고, 저주 받을 것이다.’ 그녀는 악마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의 팔, 깨어나라, 깨어나라!

8. 웃음현상

웨슬리의 일기에는 웃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기에 따르면, 웨슬리의 설교 도중 몇 사람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이런 당황스러운 장면에서도, 웨슬리는 이미 동생 찰스의 웃음을 체험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찰스의 웃음을 통해 웨슬리는 웃음현상이 이성적인 눈으로는 이상하게 보여도, 성령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인정할 수 있었다.
     
1) 동생 찰스의 웃음체험 [1740년 5월 9일(금)] 

나는 정상이 아닌 방식으로 사탄에게 일격을 당한 사람들 때문에 적지 아니 놀랐다. 그들은 웃음의 영에 잡혀있었고, 그 웃음이 그들에게 고통과 슬픔이었음에도 거기에 저항할 수 없었다. 내가 10-11년 전에 똑 같은 것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나는 그들이 나에게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찰스와 나는 주일에 초원을 거닐면서 시편을 노래하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노래를 시작하려는 데 찰스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또 화가 나기 시작하는지를 물어보았고, 그 직후에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크게 웃었다. 우리는 시편의 다음 소절을 부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우리는 거기에 몰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2) 악령에 사로잡혀 웃는 사람이 구원받음

➊ 1740년 5월 21일(수)     
저녁에 많은 사람들이 웃음의 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시선은 루크레티아 스미스(Lucretia Smith)에게 집중되었다. 우리가 알기로 그녀는 꾸미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매우 난폭하고 다양하게 악마의 찢김을 당했다. 나는 그녀가 행하는 짓과 같은 것을 전에는 본 일이 없었다. 그녀는 때로 거의 질식할 때까지 웃었고, 그 다음에는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고 나서는 4-5사람의 힘으로도 붙잡을 수 없을 정도의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발을 구르며 몸부림쳤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오 영원이여, 영원이여! 오 나는 영혼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 나는 결코 태어났던 적이 없다!’ 결국 그녀는 희미하게 그리스도께 도움을 간구했고, 그녀의 맹렬한 고통이 멈추었다.

➋ 1740년 5월 21일(수)
이제 대부분의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런 이상한 유혹을 받은 사람들은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직 엘리자베스 브라운(Elizabeth Brown)과 앤 홀튼(Anne Holton)만이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이렇게 확신했다. ‘그녀가 원했다면, 누구든 웃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목요일에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그러나 23일 금요일에 하나님께서 사탄이 그들을 더 좋은 것을 가르치도록 허용하셨다. 갑자기 그 둘은 똑 같은 방식으로 사로잡혔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거의 멈추지 않고 웃었다. 그들은 그렇게 이틀 동안 모두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그들은 한 순간에 구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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