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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1월31일 주일낮예배)

본문



말씀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1월31일 주일낮예배)
본문 : 롬8:5~8

오늘 본문말씀은 로마서 8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고 우리들에게 있어서 아주 주옥같은 수준 있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오늘 봉독한 로마서 8장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바울의 말씀을 그대로 빌린다면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종류의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1. 영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육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여러분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영의 생각을 가지고 사십니까? 아니면 육의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그 답은 여러분들 자신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만일 내가 육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영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영의 사람인 것입니다. 육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육의 생각은 육신적인 생각이고 세상적인 생각이고 마귀적인 생각이라고 야고보서 3장 1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 이 땅에 살아갈 때 만일 육신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 생각으로 꽉 차 있다면 여러분들은 불행하게도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다면 여러분들은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을 적나라하게 진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십니까? 성경말씀에서는 우리들에게 육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영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중에 사울 임금과 다윗 임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울 임금은 원래 성령이 충만했던 사람이고 그 분은 은혜를 알았던 분이셨습니다. 이스라엘 초대임금이 되었고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복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임금이 되고난 뒤에 그렇게 겸손하고 임금을 세울 때 사울은 달구지 밑에 숨을 정도로 겸손했던 인물입니다. 이런 사울이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신이 임했다’ 이렇게 되어져 있습니다. 은혜를 잃어버리고 났더니 사울은 철저하게 육신적인 세상적인 마귀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이 사위임에도 불구하고 죽이려는 사람입니다. 여러 차례 창을 던집니다. 실패했지만 틈만 나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예배까지도 육신적으로 세상 적으로 마귀 적으로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내가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배는 오늘 여러분들이 정신을 사상을 심령을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의 생애 전부를 드리는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무엘 목사님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한때 군사들을 데리고 와서 괴롭혔던 아말렉을 처벌하게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에 숨 쉬는 모든 것들을 다 죽여 없애도록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절반만 순종한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살찐 우양을 잡아다가 저 언덕 너머에 숨겨 두었습니다.

실망한 사무엘 목사님이 길을 떠나려 하자 사울 왕이 매달립니다. “목사님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예배를 드려주셔야죠.” 그러나 이때 까지도 사울은 여전히 길을 떠나려고 하는 예배를 드리지도 않고 가는 사울 목사님을 붙잡습니다. 그가 사무엘 목사님의 옷이 찢어지도록 그렇게 매달리는 의중은 ‘내가 임금인데 내가 왕인데, 내 체면좀 세워주세요’ 라는 자기 체면을 위해서 매달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체면을 세우기 위한 예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예배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이렇게 육신적이고 이렇게 세상 적이고 마귀 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았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버리신 것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은 영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영적인 가치관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가졌던 육신적이고 세상 적이고 마귀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만일 육신적이고 세상 적이고 마귀적인 생각을 가졌더라면 사울은 다윗의 손에 벌써 살해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굴속에서 숨어 있을 때 사울이 군사를 이끌고 왔습니다. 마침내 그 때 사울임금이 뒤가 급했습니다. 그래서 허허벌판에서 군사들 보는 앞에서 임금이 채신머리없이 볼일을 볼 수가 없어서 어디 숨어서 할 데가 없나 봤더니 마침 굴이 있던 것입니다. 깜깜한 굴속에 더듬어 들어갔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깜깜한 동굴 속에 보이지 않는 그 등 뒤에는 다윗이 서있는 것입니다.

굴속에 아무도 없습니다. 사울은 지금 엉덩이를 내어놓고 일을 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굴속에 오래 있었고 또 굴 깊은 곳에서 굴 밖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사울이 오는 것을 다 보았고 사울이 엉덩이를 내어놓고 일을 보는 것을 다 보고 있습니다. 단숨에 사울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찬스라고 충분히 해석될만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손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럽니까?

다윗의 머릿속에는 영적인 가치관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어떤 영적인 생각이 분명히 있었습니까? 특별히 시편 105편 15절에 ‘나의 기름 부은 받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해하지 말라.’ 다윗의 머릿속에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를 내가 손대지 아니 하여야 한다는 영적사고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가 만일 조금만 육신적으로 세상 적으로 조금만 마귀 적으로 생각을 했더라면 사울은 그 굴속에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찬스라고 해석될법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를 내가 손댈 수 없음을 그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2. 내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내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셔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목사님이라 할지라도 교회 중직이라 할지라도 교회를 100년을 다녔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여기 그리스도가 계셔야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여기 성령님이 계셔야 그분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심령 속에 오늘 성령하나님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 하나님 내게 임하시옵소서. 내 심장에 임하시옵소서. 내안에 성령님이 임하셔야 되겠습니다.

자기 생각가지고 자기 안에 있는 내면의 시퍼런 자기가 살아서 자기를 위하여 육신적으로 세상 적으로 마귀 적으로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여서라도 세상에 출세하고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우긴 것입니다. 그게 핍박자 사울입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자기를 버렸을 때 성령님이 그 안에 임했을 때 그는 비로소 ‘아 내가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잘 믿고 열심히 특심해 했는데 그게 다 잘못됐구나.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런 열심을 버리십시오. 성령 없는 열심을 버리십시오.

오늘날 한국교회의 놀라운 비극은, 성령 없는 열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성령이 없습니다. 싸우는 교회를 보십시오. 성령이 없습니다. 시퍼렇게 자기감정만 살아있습니다. 육신적인 감정 세상적인 감정 그래서 그 속에 마귀가 던져주는 악한 감정 악한 생각 거기에 휘말려 있습니다. 그것을 모릅니다. 잘하는 줄 압니다.

진짜 성령이 임하니까 바울은 내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알고 그걸 일순간에 버리고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분토처럼 버리고 자기 일생을 바쳐 헌신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사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령을 따르는 영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지금도 육을 따라 살고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종교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종교 의식에 참여한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의 마지막은 사망입니다. 죽어 지옥 갑니다. 버리십시오. 성령을 따르십시오. 성령을 따라 사십시오.

여러분 세상이 좋아서 세상을 따라간다면 불순종하는 사람을 따라간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이 원하고 육체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육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사륵스 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카타 프뉴마 성령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따라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누구입니까?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라 그랬습니다. 육을 못 박아야만 합니다. 육신적인 관계를 못 박는 것입니다. 욕심을 세상적인 것을 못 박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육체가 원하고 마음이 원하는 그걸 버리십시오. 성령을 따르십시오. 요한복음 6장 63절 말씀에 보면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육은 죽이는 건데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주일예배를 통해서 성령을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십시오. 마음에 성령님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을 따르십시오. 사도바울이 꿈꾸는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믿음생활을 제대로 하는 구원받은 성도 그는 영으로 생각하고 성령님을 모시고 그 분을 따르는 성도를 말합니다. 선택은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모시는 분 되십시오. 성령을 따르십시오. 육의 생각을 버리십시오. 육적인 마음을 던져 버리십시오. 육을 따라 행하던 것을 청산하십시오. 성령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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